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3)韓族,가야,신라

[17] 서정주의 신라 정신

자연정화 2013. 8. 10. 11:47

 

[17] 서정주의 신라 정신

  

 

 

 

  불멸의 역사서인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이 책의 후기에서 『결국 사람은 모두 마음이 답답하고 맺힌 바가 있어 그 道를 통할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말하며 장차 올 일을 생각한다』고 썼다.

  

  기자가 흉노-고조선-신라-한국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흐름을 쓰고 있는 것이나 신라통일의 전과 후에 관심이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도 6.25 사변 때 하도 참혹한 것을 많이 보고 당하고 한 뒤 자살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몰렸다가 신라 정신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고, 그 뒤 신라 정신을 시작의 한 주제로 삼았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신라 정신은 중세 유럽 사람들이 로마 정신을 재발견하여 현실의 장벽을 뚫고 나가려고 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이 큰 난관에 봉착할 때 길어 쓸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감흥과 상상력의 깊은 샘물인 것이다.

  

  

  <내가 어느 절간에 가 불공을 하면

    그대는 그 어디 돌탑에 기대어

    한 낮잠 잘 주무시고

    그대 좋은 낮잠의 賞으로

    나는 내 금팔찌나 한 짝

    그대 자는 가슴 위에 벗어서 얹어 놓고

    그리곤 그대 깨어나거던

    시원한 바다나 하나

    우리들 사이에 두어야지>

  

  (서정주:「우리 데이트는-선덕여왕의 말씀 2」)

  

 

미당은 이렇게 말했다(1995년 1월호 月刊朝鮮).

  

  『1951년부터 1953년까지가 내게 있어 신라 정신의 잉태기였지. 6.25 전쟁 중 극심한 절망감 속에서 나는 「國難이 닥쳤을 때 우리 옛 어른들 가운데 그래도 제 정신 차려 살던 이들은 난국을 무슨 슬기와 용기와 실천력으로 헤쳐 왔던가?」하는 것을 절실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더듬거려 보던 끝에 신라 정신과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야』

  

  미당이 말하는 신라 정신의 요체는 멀리 보고 한정 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려는 영원성이다.

  

  『인생 행로를 제한받고 또 스스로도 제한하며 얼마만큼만 가고 말려는 한정된 단거리주의가 아니라 한정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고 또 가려는 저 무원가지(無遠不至)주의. 신라인들에게서 우린 그걸 배워야 해. 그러면 불안과 불신과 반감과 충돌 따위를 훨씬 줄일 수 있겠지』

  

  『신라 향가에는 삶에 대한, 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자각이 들어 있어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나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소박한 감정부터 깊은 체념과 달관, 그리고 안민이세(安民理世)의 높은 이념까지를 노래한 향가도 그 바탕은 국선(國仙) 정신이야』

  

 

  국선 정신은 무엇인가?

  

  『이 천지에 대한 주인의식이 신라인들에게 작용해 통일로 이끌어간 거지. 하늘과 땅을 맡아 생활하는 주인으로서의 강한 책임 의식, 이 점이 조선시대 유교가 우리 민족에게 약자의 팔자와 분수에 다소곳할 걸 가르쳐서 망국의 길로 유도한 것과 전혀 다른 점이지. 각 개인의 값이나 민족의 가치는 에누리당하자면 한정이 없고, 에누리만 해나가다가는 민족의 장래가 정말 암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나와 내 민족의 존엄성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지. 하늘과 땅과 역사의 주인된 자로서 말이네』

  

  『민중을 억압하고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민중에게 아첨하고 추파를 던진대도 곤란해. 진심으로 민중과 일치하고 화합하려는 정신, 그게 중요하지. 신라에는 여러 훌륭한 어른들이 많지만 본받을 만한 인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로선 김유신 장군을 들겠어. 김유신 장군을 배워라! 고난을 앞장서서 짊어진 모습을…』

  

  그의 「김유신 장군 1」이란 시는 이렇다.

     

  <말과 사람이 함께 얼어 쿵쿵 나자빠지는

    혹독한 추위 속의 어느 겨울날

    고구려 평양으로 가는 험한 산길에서

    新羅 최고의 군사령관 金庾信은

    한 사람의 輜重兵 步卒이 되어

    맨 앞에서 군량미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팔뚝을 걷어 어깨까지 드러내고

    땀 흘리며 끌고 가고 있었다.

    그래서 팔심이 더 세기로야

    호랑이 꼬리를 잡아 땅에 메쳐서 죽인

    金閼川을 신라 최고로 쳤지만

    그런 김알천의 그런 힘까지도

    金庾信 장군의 힘에다가 비기면

    젖비린내 나는 거라고

    신라 사람들은 간주했었다>

  

  

  서정주 선생은 신라의 화랑들이 가졌던 미래불(未來佛) 미륵신앙을 자신의 시 「신라 사람들의 未來通」에서 이렇게 썼다.

  

     <신라 사람들은 백년이나 천년 만년 억만년 뒤의 미래에 살 것들 중에 그중 좋은 것들을 그 미래에서 앞당겨 끄집어내 가지고 눈앞에 보고 즐기고 지내는 묘한 습관을 가졌었습니다. 미륵불이라면 그건 과거나 현재의 부처님이 아니라, 먼 미래에 나타나기로 예언만 되어 있는 부처님이신 건데, 신라 사람들은 이분까지도 그 머나먼 미래에서 앞당겨 끌어내서, 눈앞에 두고 살았습지요>

  

  

  대한민국은 신라의 재생

  

  신라의 힘은 흉노족의 군사.정신문화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기마문화와 샤머니즘으로 대표되는 신라의 토속적인 요소와 중국에서 들어온 漢字-불교-유교문화가 균형을 이루면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신라는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의 생동성을 이어갔으나 중국적인 것이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정신도 국력도 시들어 갔다. 초기 신라왕은 유목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샤먼(巫王)을 겸했으며, 금관은 정치권력의 상징이자 샤머니즘의 구현이기도 했다. 화랑도와 신라 지배층의 주체성은 샤머니즘이란 토양에 뿌리 박았으므로 이것이 불교.유교에 의해 약화될 때 위기를 만났다.

  

  초원의 활기도 바다의 개방성도 사라지면서 한민족은 정신과 육체가 다 같이 야위어 갔다.

  

  1945년 한반도 분단으로 남한은 사실상 섬이 되었다. 그 뒤 조선조적인 내륙문화와 결별하고 해양문화권으로 흡수된 이후 새로운 운명이 개척되기 시작했다. 한민족이 조선왕조적인 질곡에서 해방되니 잊혀졌던 흉노적인 생명력이 튀어오른 것이다.

  

  대한민국은 바로 이런 흉노적인, 유목적인, 기마민족적인 활달함을 한민족의 피 속에서 재발견하였다. 이 나라의 모습은 점점 신라를 닮아 가기 시작했다. 신라인 이후 가장 넓은 활동공간을 확보한 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이었다.

  

  신라인 이후 처음으로 해양세력화하였다. 신라인 이후 처음으로 자주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통일신라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은 자주국방이 가능한 일류국가로 가는 길을 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런 쾌속질주를 가능하게 했던 세력은 나당(羅唐)동맹을 이끌어 냈던 김춘추와 비견되는 한미(韓美)동맹의 건축가 이승만이었고, 김유신및 화랑도와 닮은 박정희 및 국군 장교단이었다.

  

  한국인은 이승만 박정희의 영도하에, 그리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넓은 활동공간을 얻었다. 이 공간을 활용할 정치적 자유도 얻었다. 그래서 빠른 기동이 생겼다. 공간과 자유와 기동은 한국인의 몸속에서 오랫동안 잠자던 흉노의 피를 끓게 했다. 민족 에너지의 대폭발은, 지도자들이 민족의 원형질과 유전자를 건드려 흥분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의 정직으로 적(敵)의 굽은 곳을 치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제2의 문무왕(文武王)이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통일대왕인 문무왕의 文은 중국적 지성일 것이고, 武는 흉노적 군사력일 것이다. 오늘에 맞게 해석한다면 文은 지식인.언론인.법조인이고, 武는 군인.기업인.과학자들일 것이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요소를 균형 있게 통합하여 자유통일을 쟁취한 뒤 조국 선진화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박정희로 대표되는 실용적인 정치지도자의 시대를 1993년에 마감하고 그 뒤 11년간 조선조적인 문민정치 시대를 다시 경험하고 있다. 명분과 위선과 내분에 치우쳐 안보와 경제와 과학을 소홀하게 다루다가 외적의 침략을 부른 역사적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근대화 혁명의 시기에 대한민국이 양성한 실용.과학.합리의 정신으로써 문민 정권의 수구성을 돌파할 것인지, 주저앉을 것인지 조국은 기로에 서 있다.

  

  이런 때 우리가 민족사로부터 지혜와 용기와 상상력을 끌어내려 한다면, 근세의 유럽인들이 로마를 연구했듯이 신라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그 신라 정신의 핵심이 바로 흉노적인 것이고 이는 한국인의 원점이자 자주의 기준점인 것이다.

  

  삼국통일 前後의 신라가 정신.물질.군사.외교 면에서 일류국가였고 민족의 제1 황금기였다면, 1948년 이후의 대한민국은 제2의 황금기이다. 경제규모 10위권, 군사력 6위권, 삶의 質 30위권의 대한민국이다. 이 두 번의 황금기를 주도한 영웅들(김춘추, 김유신, 김법만,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등)의 시대정신은 자존심.실용주의.열린 자주로 표현된다. 그 바탕을 흐르는 것은 자신의 야만성까지도 정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내 버리는 흉노적 기질과 이를 통제하는 합리주의의 절묘한 균형과 통합, 즉 文武의 합일인 것이다. 그 문무왕은 『나는 흉노왕의 후손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했고, 김유신은 승리의 비결이 『우리의 정직으로 적의 굽은 곳을 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당한 정직으로 위선과 거짓을 부술 때 민족사의 제2황금기는 자유통일을 넘어 조국 선진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