詔以其子 春秋嗣位 顯慶元年三月 又破百濟兵 使來告㨗龍朔元年 春秋卒 子法敏嗣位 三年四月 詔新羅 置雞林大都督 仍授法敏 雞林州大都督 麟徳二年八月 法敏與熊津都督夫餘隆 盟于百濟之熊津城 사신을 보내 알려왔다. 용삭龍朔 원년 춘추春秋가 죽었다. 법민法敏에게 <계림주대도독 雞林州大都督>의 직함을 주었다. 인덕麟徳 2년 8월 법민과 웅진도독 熊津都督 부여융夫餘隆이 백제의 웅진성熊津城에서 맹약하였다. 作咸亨五年 與此異)二月 新羅王 金法敏 既已納髙麗叛亡之衆 又封百濟故地 遣兵守之 건너 서쪽으로 돌아왔다. 태산의 아래에 부임하였다. 金法敏 이 이미 망한 고구려의 반란 무리들을 받아들이고, 또한 백제의 옛땅에는 왕을 봉하여 살도록 하고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하였다. 仁問 至中路 聞新羅降乃還 法敏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신라왕으로 삼았다. 도중에 신라가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復 法敏官爵 既盡有百濟之地 及髙麗南境 東西約九百里 南北約一千八百里(按舊唐書云 東西千里 南北二千里 新唐書云 横千里 縱三千里 今既併百濟 髙麗無反 狹于前之理 葢專指新闢之地耳) 사신을 보내 입조하고 방물을 바쳤다. 전후하여 법민의 관작을 회복시켰다. 이미 이미 백제의 땅과 고구려의 남쪽 지역을 차지하였다. 가로 천리 세로 삼천리라고 하였다. 이제 이미 백제 고구려를 병합하고 반란도 없는데 앞에 든 나라사이에 끼일 이유가 없으니 이것은 오로지 새로 개척한 강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來朝 其年理洪卒(舊唐書 作長安二年卒) 冊其弟崇基為王 仍襲兄輔國大将軍左豹韜衞大将軍雞林州都督 神龍三年 授驃騎大将軍 先天元年改名興光 2년(구당서舊唐書 에는 천수天授 3년으로 기록) 정명政明이 죽었다. 그 아들 이홍理洪을 왕으로 책봉하였다. 3년 사신을 보내 래조하였다. 그해에 이홍理洪이 죽었다. <보국대장군 좌표도위 대장군 계림주도독輔國大将軍 左豹韜衞大将軍 雞林州都督>을 이어 받도록 하였다. 신룡 神龍 3년 <표기대장군驃騎大将軍>의 직함 주었다. 선천先天 원년 흥광興光으로 개명하였다. 及武勲迴 降書賜之 又使其弟金嗣宗 來朝并貢方物 至二十一年 命太僕卿員外置 金思蘭 使于新羅 思蘭本 新羅行人 恭而有禮 因留宿衞 及是委以出疆之任 且便之也 是年興光 奏國内有芝草生 畫圖以獻 감사의 뜻을 담은 글을 보냈다. 12년에 이르러 그 신하 김무훈金武勲이 새해를 축하하고 무훈武勲이 돌아갈 때 조서를 보내 주었다. 또한 그 동생 김사종金嗣宗을 사신으로 하여 래조하고 선물을 보냈다. 21년 <태복경원외치 太僕卿員外置>에 김사란金思蘭을 임명하고 사신으로 삼아 신라로 보냈다. 난다고 하면서 그림을 그려 보냈다. 遣從弟 金忠相來朝 卒於路 贈衞尉卿 二十五年興光卒 承慶嗣位 지렴志亷에게 <홍로소경 원외치鴻臚少卿 員外置>의 직함을 주고 비단 백필을 주어 숙위하게 하였다. 23년 11월 종제從弟 김충상金忠相을 보내 래조하였는데 도중에 죽었기에 <위위경衞尉卿>을 추증하였다. 25년 흥광興光이 죽었다. 승경承慶이 왕의 자리를 이었다. 授左清道率府員外長史 賜綠袍銀帶還畨 自後頻來朝貢 七載遣使獻金銀 及六十總布魚牙紬 朝霞紬 牛黄 頭髮 人參 자리를 잇도록 명하였다. 이해 4월 사신을 파견하여 방물을 보냈다. 10월 사신을 보내 정월을 축하하였다. <좌청도 솔부 원외장사左清道 率府 員外 長史>의 직함을 주었다. 금 은과 60수 총포總布 어아주魚牙紬 조하주 朝霞紬 우황 牛黄 머리카락 인삼 人參 을 보냈다. 持節冊命 七年 使金標石 來賀正 授衞尉員外少卿 八年 遣使來朝 并獻金銀 牛黄 魚牙紬 等方物 建中四年 乾運卒 無子 國人 立其上相 金良相為王 貞元元年 令户部郎中 葢塤往 冊 其年 良相卒 立上相 敬信為王 돌아가게 하였다. 대력大厯 2년 헌영憲英이 죽었다. 그 아들 건운乾運이 왕위에 올랐다. 3년 창부낭중 倉部郎中 귀숭경 歸崇敬 에게 명하여 부절을 가지고 가서 책봉하게 하였다. 7년 사신 김표석金標石을 보내와서 정월을 축하하였다. 魚牙紬 등 방물을 보냈다. 건중建中 4년 건운이 죽었다. 아들이 없어서 나라사람들이 상상上相 김양상 金良相을 왕으로 세웠다. 정원 貞元 원년 호부낭중户部郎中 개훈葢塤을 보내 책봉하였다. 그 해에 양상 良相이 죽었다. 상상上相 경신敬信이 왕이 되었다. 三年 遣使金力奇 來朝 四年 遣使金陸珍 等來朝貢 五年 王子金憲章 朝貢 七年 重興卒 其相金彦昇 遣金昌南 等告哀 其年 七月 授彦昇 開府儀 同三司 檢校大尉 新羅國王 彦昇妻貞氏 冊為妃 仍賜 大宰相 金斌等三人戟 숙위하던 왕자 김헌충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놓아 주고 시비서감試祕書監의 작위를 더하여 주었다. 3년 사신 김역기金力奇를 보내 내조하였다. 4년 사신 김육진金陸珍 등을 보내 수호하였다. 金昌南 등을 보내 상喪을 알려왔다. 7월 언승彦昇에게 <개부의 동삼사 검교대위 신라국왕 開府儀 同三司 檢校大尉 新羅國王>의 직함 주었다. 언승彦昇의 처 정씨貞氏를 비妃로 책봉하고 대재상大宰相 김빈金斌 등 3인에게 문극門戟을 내렸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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