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敏 遣使入朝謝 仁問乃還辭王 詔復法敏 官爵 然多取 百濟地 遂抵髙麗南境矣(按唐會要言 盡有百濟之地 及髙麗南境 盖髙麗北境 已屬渤海 故新羅既有百濟之地 又兼有 髙麗南境 非得百濟而 始抵髙麗之南也 新書誤 會及字之意 與髙麗傳不合 謹詳訂于從) 관작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백제의 땅을 많이 차지하여 드디어 고구려의 남쪽 지경과 접하였다. (살피건대「당회요唐會要」에는 “백제의 땅과 고구려의 남쪽 지경을 모두 차지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지경을 차지하였다. 백제땅을 얻거나 처음으로 고구려의 남쪽과 접한 것이 아니다. 신당서가 당회요의 글자의 의미를 오해한 것으로서 고구려전과 합치되지 않는다. 삼가 상세히 정정하고 이에 따른다.) 初渤海 靺鞨 入登州 興光 擊走之 進興光寧海軍大使 使攻靺鞨 羅 자수문포紫繡紋袍 금은으로 만든 기물을 주었다. 흥광興光 또한 기이한 개와 말, 황금 미발美髢 등의 물건을 보냈다. {개원}초에 발해 말갈이 등주登州를 공격하였을 때 흥광興光이 이를 물리쳤다. 을 왕으로 승경承慶의 처 박씨朴氏를 비妃로 책봉하였다. {승경承慶이}죽으니 그 동생 헌영憲英이 왕위를 이었다. 황제가 촉蜀에 있었는데 사신이 양자강을 건너 성도成都에 이르러 정월 하례에 참가하였다. 元年 遣户部郎中 葢塤持節冊命之 권력을 다투어 서로 공격함으로써 나라에 대란이 일어나 3년 후에 비로서 안정되었다. 정원貞元 원년 호부낭중户部郎中 개훈葢塤에게 부절을 주어 보내어 이를 책봉하도록 하였다. 寶厯間 再遣使者 來朝 留宿衞 開成五年鴻臚寺 籍質于 及 學生 嵗滿者 一百五人 皆還之 등에게 문극門戟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자 조칙으로 이를 들어 주자 다시 조공하였다. 7년 언승彦昇이 왕위에 올랐다. 장경長 慶, 보력寶厯년간에 다시 사자를 보내 내조하고 숙위하며 머물렀다. 보냈다. 하였다.) 保臯以齒 年以藝 常不相下 自其國皆來為武寧軍小将 後保臯歸新羅 謁其王曰 遍中國以新羅人為奴婢 願得鎮清海 使賊不得掠人西去 清海海路之要也 王與保萬人守之 바닷물 속에 잠겨서 50리를 헤엄쳐도 숨이 막히지 않으며, 용맹스럽고 굳건한 것은 보고保皐도 따르지 못한다. 정년은 보고保皐를 兄이라 부르는데, 보고保皐는 나이를 내세우고 年은 재주를 내세워 늘 서로 뒤지지 않으려 하였다. {두 사람이} 다 新羅에서 들어와 무령군武寧軍의 소장小將이 되었다. 있습니다. 바라옵건데 청해淸海에 鎭을 설치하여 해적海賊이 西方으로 사람을 사로 잡아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청해淸海는 해로海路의 요충지要衝地입니다.”라고 하였다. 王은 보고保皐에게 군사 1만 명을 주어서 지키게 하였다 元規曰 若與保臯所負 何如 奈何 取死其手 年曰 饑寒死 不如兵死快 遂去謁保臯飲之極歡 飲未卒 聞大臣 殺其王 國亂無主 保臯分兵五千人 與年 持年泣曰 非子不能平禍難 富貴를 누리고 있었으나 年은 연수漣水에서 나그네로 궁색스럽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술주戍主 풍원규 馮元規에게 말하길 “나는 동쪽으로 돌아가 張保皐에게 乞食을 할까 하오.”라고 하였다. ”라고 하니, 정년이 말하길 “굶주림과 추위로 죽는 것보다는 통쾌하게 싸우고 죽는 것이 낫다.”하고, 드디어 길을 떠나 보고를 만나니 보고는 주연을 베풀어 극진히 환대하였다. 들려왔다. 보고保皐는 병력을 나누어 5천명을 정년에게 준 뒤, 정년을 붙잡고 울며 말하기를 “자네가 아니고서는 환난을 평정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불러서 상相으로 삼고, 정년으로 하여금 장보고를 대신하여 청해를 지키게 하였다. 회창會昌 이후로는 조공이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不為婚 永徽元年 王金真徳 大破百濟 遣使金法敏來朝 五年 真徳卒 髙宗為舉哀于永光門 使太常丞張文 收弔祭之 贈開府儀同三司 仍賜綾綵三百段 이기자 그 무리들은 옥저沃沮로 가서 보존하였다. 뒤에 옛 나라로 돌아갔다. 그 곳에 남은 사람들을 신라로 불렀다. 나라에는 김金 박朴 두 성씨가 많고 다른 성과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휘永徽 원년 그 왕 김진덕金真徳이 백제를 크게 쳐서 이겼다. 애도를 표하였다. 태상승太常丞 장문수張文收로 하여금 조문하게 하고 <개부의 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고 릉채綾綵 3백단을 보내 주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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