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興二年 其王餘慶 始遣使上表曰 臣建國東極 豺狼隔路 雖世承靈化 莫由奉藩 瞻望雲闕 馳情罔極 凉風微應 伏惟 陛下協和天休 不勝係仰之情 謹遣私署 冠軍将軍駙馬都尉 弗斯侯 長史 餘禮 龍驤将軍帶方太守 司馬張茂 等投舫波阻 搜徑元津 “나라를 동쪽 끝에 세웠으나 승냥이와 이리들에게 길이 막히니 비록 대를 이어 좋은 관계를 맺어 왔으나 번藩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멀리 궁궐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마음 지극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못하겠습니다. 삼가 제가 임명한 <관군장군 부마도위 불사후 장사> 여례餘禮 와 <용양장군 대방태수 사마> 장무張茂 등을 보내어 망망대해에 배를 띄우게 하여 바닷길을 나아가게 하였으니 크게 덮어 주어서, 황제의 궁궐에 도착하여 제 뜻이 알려진다면 비록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는다 하여도 영원히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應機馳擊 矢石暫交 梟斬釗首 自爾以來 莫敢南顧 自馮氏數終 餘燼奔竄 醜類漸盛 遂見凌逼 構怨連禍 三十餘載 財殫力竭 轉自孱踧 若天慈曲矜 逺及無外 速遣一将 來救臣國 선조 쇠釗[고국원왕]가 이웃간의 우호관계를 가볍게 여기고 몸소 군사를 이끌고 우리 경계를 쳐들어 왔습니다. 저의 선조인 수須가 군사를 정돈하여 번개처럼 달려가 기회를 보아 들이치니 화살과 돌로 싸움을 벌인지 잠깐동안에 쇠釗의 머리를 베어 매어 다니 그 이후로는 감히 남쪽을 노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협박을 하니 원한이 쌓이고 연달아 화가 이어진 것이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빨리 한 장수를 보내 우리 나라를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懷首丘之心 天威一舉 有征無戰 臣雖不敏 志效畢力 當率所統 承風響應 且髙麗不義 逆詐非一 外慕隗囂 藩卑之辭 内懷兇禍 豕突之行 이것은 멸망이 다가온 것이며 다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또 풍씨 일족의 군사와 말에게는 새와 짐승이 주인을 따르는 정을 가지고 있고, 낙랑의 여러 군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있으니 천자가 한번 위엄을 드러내면 싸우지 않고도 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속이는 것이 한두 가지만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외효隗囂처럼 번신인체 겸손하게 말을 지껄이나 안으로는 흉악한 마음과 저돌적인 행동을 품고 있습니다. 농서일대를 장악하였으며 뒤에 야심을 드러내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자 하였으나 후한 광무제에 의해 패하면서 회한을 남기고 죽었다. 屍十餘 并得衣器鞍勒 視之非髙麗之物 後聞乃是 王人來降臣國 長蛇隔路 以沈于海 雖未委當 深懷憤恚 陛下合氣天地 勢傾山海 豈令小豎 跨塞天逵 今上所得鞍一 以為實驗 이루면서 왕의 땅을 넘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제 취하지 않으면 뒤에 후회할 것입니다. 지난 경진년 庚辰年 이후 우리나라 서쪽 소석산 북쪽 바다에서 시체 10여구를 발견하여 옷과 기물 안장 굴레 등을 수습하였는데 모두 고구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것입니다. 비록 확실한 것은 아니나 깊은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폐하는 천지의 기운을 모았고 기세는 산과 바다를 기울일만한데 어찌 어린아이가 변방에 걸터 앉아서 천자에게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을 내버려 두십니까? 이제 위에서 말한 안장 하나를 증거물로 보냅니다.”라고 하였다. 欣嘉至意 用戢于懷 卿與髙麗不睦 屢致凌犯 茍能順義 守之以仁 亦何憂于冦仇也 前所 遣使浮海 以撫荒外之國 積年不返 達否 未能審悉 卿所送鞍 比校舊乗 非中國之物 不可以疑似之事 以生必然之過 經畧權要 已具别旨 또한 백제사신이 돌아갈때에 사신 소안邵安을 같이 가도록 하였다. 조서에 말하기를 “경은 오복五服의 바깥에 살면서 산과 바다가 가로막힌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위魏나라에 정성을 다하니 그 뜻을 기쁘게 생각하여 깊이 간직할 것이오. 귀국과 고구려가 사이가 나빠 수차례 침범하기에 이르렀으나 義를 따르고 仁으로 지킨다면 어찌 적이 침범하는 것을 걱정할 것이오. 아니하여 제대로 도착하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였소. 왕이 보내온 안장을 사신이 타고 간 당시의 것과 비교해 보니 중국의 물건이 아니오. 비슷하게 그럴것이라 하여 의심하면 반드시 과오가 생기는 법이오. 나라를 경략하는 요체를 별도로 적어 보내는 바이오. 잘못이고, 顯祖는 高祖 孝文帝의 父로서 51代 獻文帝(在位 465~471, 諱는 弘)이다. 急乃應展義扶微 乗機電舉 但以髙麗稱藩先朝 供職日久 于彼雖有 自昔之釁 干國未有犯令之愆 卿使命始通 便求致伐 討尋事會 백성을 쉬게하는 큰 덕을 저버리고 군사를 일으켜 싸움을 벌인지가 여러 대가 되었고, 서로 사이에 풀기 어려운 난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소. 미약함을 돕자면 기회를 타서 번개처럼 들이쳐야 할 것이오. 그러나 고구려는 선대의 조정에 번으로 자처하고 공직한지 오래되었소. 그대들 나라사이에는 이전부터 틈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영을 어긴 죄가 없소. 왕이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정벌하여 줄 것을 요청하여 깊이 검토해 보았으나 故聴其所啟 詔禮等還 若今復違旨 則過咎益露 後雖自陳 無所逃罪 然後興師討之 于義為得 所獻錦布海物 雖不悉達 明卿至心 今賜雜物如别 가 빈번하게 청하는 것이 모두 사리에 맞는지라 행인들도 그 청을 억제하지 못하였고, 법을 집행하는 관리도 그 책임을 묻지 못하였던 것이오. 허물이 날로 들어날 테니 뒤에 변명을 하더라도 그 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오. 그때에 군사를 일으켜 토벌한다면 의리에도 합당할 것이오. 보내준 비단과 포목 해물은 비록 모두 다 도착하지 않았으나 왕의 지극한 뜻이 밝게 드러났소. 이제 여러가지 물건을 별지와 같이 보내는 바요.(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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