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고고학·유적 자료

<10> 수메르의 천문학-'뛰어난 고대의 천문학자들'

자연정화 2015. 3. 16. 13:24

<10> 수메르의 천문학-'뛰어난 고대의 천문학자들'

저자 : Zecharia Sitchin     번역/편집 : 주동주

지은이에게 수메르의 전승은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 이야기나 황금의 이상향 엘 도라도보다도 더욱 흥미가 있다. 이들 두 전설적인 이야기에 비해 수메르 전승은 분명하게 점토판 문서 텍스트와 원통 인장 그림 등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가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실감이 나고 흥미와 관심을 일으킨다.

 

 

바빌로니아인들이 고대 세계에서 뛰어난 천문학자들이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그들은 코페르니쿠스보다 수천 년 앞서 지구와 다른 행서들이 둥글며 태양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지식 덕택에 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예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이 번역된 문헌들은 놀랍게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거의 모든 천문학 지시그이 수학적 기초가 그 이전의 수메르 문명에서 이어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이런 복잡한 방정식의 이론적 기초는 이해하지 못한 채 그 활용법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그 뒤를 이은 어떤 민족들보다도 태양계와 우주에 관해 훨씬 더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서기전 3000년경에 만든 달력은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의 모델이 되었으며 또한 그들은 여러가지 신비한 천문학적 현상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예컨대, 지구는 자전하는 동안 자전축이 조금씩 기울어 북극이 가리크는 별의 각도가 아주 천천히-72년마다 1도씩-달라지게 된다. 이 현상을 세차(歲差 Precession)라고 한다. 북극이 1도 움직이는 데 소요되는 72년에 원주의 360도를 곱하면 1대년(大年), 곧 북극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동일한 북극성을 가리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25,920년으로 계산된다.

수메르인은 이 세차를 이해했으며 대년의 길이도 알고 있었으니, 이것을 관측하는 데 소요되는 기나긴 시간과 그들이 가지고 있었을 도구를 생각할 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수메르인들은 별들 사이의 거리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했다. 그러나 하늘이 아닌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알게 되었으며 더욱이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그 같은 천문도는 우주 여행자들에게는 필요했겠지만, 수메르인들은 과연 무슨 일에 활용했을까?

그들은 또한 태양계에 태양과 지구와 달을 합해 12개의 천체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 중 11개는 우리가 알고 있다. 이것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자.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적 한계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행성인 목성과 토성 너머에 3개의 행성이 더 있음을 알고 있다. 천왕성은 1781년에 발견되었다. 그런데 50년간 이별을 관측한 천문학자들은 이 별의 궤도가 약간 미동함을 발견하고 어떤 미지의 행성의 중력 작용으로 그런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 결과 1846년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19세기 말이 되자, 이 해왕성의 궤도가 또한 미동함을 알아차리고 탐색을 계속한 결과 1930년 미국 클라이드 톰보 Clyde Tombaugh가 명왕성을 발견했다.
 

실제로 1780년까지 우리 태양계에는 지구를 제외한 7개의 행성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더욱이 그 이전에는 지구는 신이 창조한 으뜸가는 피조물인 인간이 거주하는 천체였기에 모든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한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태양 중심설을 주장했다. 교회의 분노를 두려워한 탓에 그는 임종시인 1543년에야 저서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내놓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지구는 납작한 원반 같고 둥근 하늘이 붙어 있어서 별들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행성들은 붙박이 별(항성)과는 달리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서기 2세기경의 톨레미 Ptolemy 이후 코페르니쿠스 시대까지 1천 3백 년 이상 지배적인 천문학 체계로 군림해 왔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실제로 그가 오래된 고대의 기록을 재검토하여 정립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에 의하면, 톨레미 이전의 학자들인 서기전 2세기경의 히파르코스 Hipparchos와 3세기경의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 Aristarchos는, 행성들의 복잡 미묘한 운동에 대한 의문은 지구가 아닌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이라고 가정하면 쉽게 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고페르니쿠스보다 2천 년이나 앞서 이들 그리스 학자들은 태양 중심설을 믿었던 것이다. 흥미 있게도 서기전 3세기경의 천문학자들이 서기 16세기경의 학자들보다 더 많은 사실을 더욱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흥미 있게도 서기전 3세기경의 천문학자들이 서기 16세기경의 학자들보다 더 많은 사실을 더욱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기 그리스와 로마의 학자들은 어찌하여 지구가 납작하며 그 밑에 하계(下界) 곧 지옥이 있다고 믿었던가?

 

칼데아인-천문학자

서기전 2세기경 소아시아에서 살았던 히파르코스는 하지.동지의 지일(至日 Solstice)과 주야 평분(平分)의 춘분.추분(equinox)의 이동, 곧 세차 운동은 단지 지구가 둥글다는 가정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구가 구형인 것을 알았으며, 이에 필요한 수학적 계산법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 세차 현상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주어진 황도대(黃道帶 Zodiac)의 별자리에 태양이 위치하고 있는 것을 관측하면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황도대의 궁(宮)에서 다른 궁으로 이동하려면 2,160년이 걸린다. 히파르코스가 이것을 관측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그런 지식을 얻었을까? 그보다 2세기 앞서 살았던 에우독소스는 로마에 세워진, 거인 아틀라스가 머리 위로 들고 있는 구형의 천궁도를 설계했다. 이 천궁도에는 황도대의 성좌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하늘의 별자리 지도는 그때보다 1천 8백년이나 앞선 실로 서기전 22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점에 관해 히파르코스는 자신보다 1천 년 이전부터 내려온  우루크, 보르시파 및 바빌론의 신관들로부터 천문학 지식을 얻었다고 기록했다.

또 서기전 1세기경 그리스 역사가인 디오도로스 시클로스는 옛날의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의 정확성을 언급하며, "칼데아(옛 바빌로니아)인들은 행성들의 이름을 짓고 태양이 그 중심점이며, 행성들은 그 자식으로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고 기술했다.

이것은 서기전 5세기 이전의 칼데아인들이  그 이후의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정확한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실로 오랫동안 '칼데아인 Chaldeans'이란 이름은  '별을 응시하는 사람", 곧 천문학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스인의 천문학 지식은 결국 칼데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점성술
 

≪구약성서≫ <창세기>에 씌어진 대로 '칼데아의 우르'에서 왔던 아브라함은 야훼로부터 미래의 히브리인의 자손들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면 하늘의 별을 응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구약성서≫에는 천문학 이야기가 꽤 많이 언급되고 있다. 요셉은 자신과 형제들을 12개의 천체로 비유했으며, 족장 야곱은 자신의 열두 후손을 황도대의 열두 성좌에 비유하며 축복했다.

<아가(雅歌)>와 <욥기>에는 되풀이하여 천체 현상과 황도대의 성좌 및 플레이아데스 성단 같은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 중동에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늘을 12개의 궁으로 분할하는 황도대라든가 그 밖의 천문학 지식이 풍부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리스인들이 인용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 자료는 점토판 문서, 명각, 원통 인장, 그림, 천체 목록, 기도문, 달력, 태양과 행서의 일출 일몰 시간표 및 일식, 월식의 예언 등 대단히 넓은 분야에 걸쳐 있다. 그런데 이 시대 이후의 문서들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이상하게도 순수 천문학이 아닌 점성술(占星術 astrology)적인 특징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천체 운동은 왕과 신관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중요한 관심하였으면, 별을 관측하는 목적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평화, 풍작, 기근 등을 예언하는 데 있었다. 서기전 1000년경에 씌어진 수 백 장의 문서를 보면 이들 관측자들은 국가와 백성과 왕들의 운수같은 국가적 안목에서 천체를 관측했음이 분명하다.

달이 계산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누군가가 큰 소시를 침입할 것이다.
혜성이 태양의 궤도에 이르면
광야를 흐르는 물줄기가 줄어들고
큰 소동이 일어나리라.
목성이 금성과 병행하여 나타나면
이 땅의 기도자들이 신의 마음에 감응하리라.
태양이 달의 위치에 서면
이 땅의 왕이 왕좌를 안전하게 지키리라.

 

이처럼 미신적으로 보이는 점성술의 예언이라 할지라도 정확한 천체 관측 정보가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항서, 행서, 태양, 혜성, 유성, 기타 천체를 구별하고 태양, 달, 지구의 상대적 운동을 계산하여 일식과 월식을 예언했다. 물론 천체의운동이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것임을 파악했으며, 이로써 태양 중심설을 확신했던 것이다.

지구와 천체의 상대적 운동을 관측하여 바빌론.앗시리아인들은 정확한 천체력(天體曆 ephemerides) 매월 매일 하늘에 나타나는 천체의 위치를 예보하는 조견표(照見表)을 만들었다. 사톤 G.Sarton 교수는 ≪서기전 3세기경의 칼데아의 천문학≫에서, 이 천체력은 원래 고대 수메르의 우루크와 후대 바빌론에서 만들어진 것의 두 종류가 있는데, 뜻밖에 좀더 오래 된 우르크력(曆)이 더 정확했다고 한다.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그는 그것이 수메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