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고고학·유적 자료

신비의 유물 흑피옥 그 베일을 벗긴다

자연정화 2016. 5. 7. 13:12

 

문화와 유물의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가지의 요건이 필요하다.

요건 중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미지의 유물로 남아 있는 초 고대 옥기가 있다. 바로 흑피옥이다. 흑피옥은 예술적 가치가 너무도 뛰어 나며 찬란했던 문화의 유물로 여겨지는 신비스러운 고대옥기 유물이다.

흑피옥은 오래 전 부터 내몽고자치구 현지인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집안대대로 계승되어 내려 오기도 했다. 출토지의 형태는 대체로 웅덩이 같은 작은 동굴처럼 인공적으로 파여진 공간에서 발견 되었고 무덤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지만 공식발굴이 아니어서 공인 받을 상황이 되지 못했다.

 

 

 

 

 

 

 

 

 

흑피옥은 옥을 조각하여 흑색염료를 칠한 옥기이다. 피옥이란 명칭은 중국 고대옥기 권위자였던 전 길림대 교수 고 백악(바이웨)선생이 명명하였다.고 백악 교수를 비롯하여 진일민 하덕무 교수 등 중국에 고대옥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흑피옥을 후기 신석기시대 범 홍산문화 유물로 분류했다.

 

그들은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유물이 발굴되는 지역이 교차하는 점과 역사의 연혁이 연결되는 문화로 규정하고 옥기의 용도와 조형의 일치 등도 그 이유로 들었다. 필자는 흑피옥을 발굴하기 위하여 백악교수와 함께 중국 국가문물국장에게 흑피옥 발굴을 공식으로 요청했었다. 그 후 중국국가 문물국은 내몽고자치구 문물국에 흑피옥을 발굴하라는 지시를 했다.

 

필자가 내몽고자치구 문물국과 협의하여 올란챠프 박물관과 현장에 들어가 공식발굴에 착수했었다.수년 동안 발굴할 장소를 물색하고 지정하는 작업을 했다.

2008년 첫 발굴작업에 들어 갔고 2009년 발굴을 진행하던 중 인골로 보여지는 뼈가 나왔었다.

 

그러나 해당 박물관장은 그 뼈를 수습한 뒤 즉시 발굴을 중단시켰다. 필자는 강력하게 어필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 할 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 일대에 민간인의 접근이 철처하게 봉쇄되었고 통제되었다고 한다.

 

흑피옥의 대표적인 기형은 C형룡, 옥웅룡, 태양신, 옥고, 옥패, 옥조, 옥벽, 이공기, 삼공기, 인물상, 동물상 등으로 홍산옥기와 대부분이 일치한다. 홍산옥은 부장품과 비부장품으로 나뉜다. 묘에서 나오는 부장품은 비부장품에 비해 수가 매우 적다. 종류별로는 의식류, 제기류, 상징류, 장식류, 도구류가 있다.

흑피옥은 홍산옥기에 비해 의식류와 제기류 특히 장신구의 수가 매우 적다. 홍산문화와 문화적 변화나 차이가 꽤 있던 것으로 보여진다. 흑피옥은 홍산옥 보다도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주로 예술의 표현 수단으로 만들어 지고 그 작품을 향유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물상과 동물상 등에서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이 많으며 홍산문화 후대의 더 진보된 유물로 예견하고 있다. 내몽고 적봉시 북서측 커썬커텅치에서 북동측 나이만치를 기점으로 넓은 권역에서 발견되었던 흑피옥은 홍산문화 홍산옥기와 많은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흑피옥이 출토된 지역은 요하문명의 초기문화인 소하서문화 (BC 7,000)에서 부터 말기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역사의 유적과 문화재가 발굴되는 요하문명의 요람이기도 하다. 요하지역에서 발견되는 흑피옥은 옥기의 진보적 변천과정과 홍산문화와의 관련성 등을 고려할때 우리 한민족의 문화라는 추정도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그 시기는 고조선 시기에 해당 될 가능성도 충분히 가늠케 하는 것이다. 중국 당국의 발표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으나 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며 그 가능성에 두는 무게는 크고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것이다.

흑피옥과 홍산옥기의 기형은 매우 신비하다. 당시에 옥 재료의 채취, 재단, 가공의 기술은 아직도 미스테리이다. 일반에서는 인간의 창작품이라는 견해보다 외계인의 창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그 이유는 고대인의 예술적 감성은 현대인과 비교할때 신앙과 모든 환경이 크게 달랐기 때문에 관념과 발상의 차이가 컷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몇 만년 전 유물이다느니 외계인이 만들었다느니 하는 터무니 없는 주장들 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범 홍산문화권 흑피옥은 2000년대에 접어 들면서 중국과 대만의 수집가들에 대대적으로 수집으로 인하여

2005-6년경 쯤에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고갈이 되었었다.

 

 흑피옥을 찾는 사람이 많아 지면서 언제부턴가 내몽고 현지에서 흑피옥과 유사한 검은 염료를 칠한 각양각색의 옥기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흑피옥과 유사한 검은 옥기들은 진위와 출처가 불분명하다. 이런 흑피옥과 유사한 옥기들이 내몽고지역 현지인들에 의해 내몽고에서 출토된 모양새를 하여 중국 전역에서 유통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내몽고에서 발견되었던 범 홍산문화 흑피옥과는 문화적 시대적으로 다른 옥기들이다. 이 옥기들은 더 현란한 조형도 있으며 여러형태가 복합된 기형들도 많다. 흑피옥과 조형, 옥기표면의 질감, 흑색염료 등에서 차이가 크다.

필자는 적봉시 권역에서 출토되었던 흑피옥을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말기에 이르는 장고한 역사를 지닌 범 홍산문화 또 다른 표현으로는 흑피옥문화 옥기유물로 해석한다.

중국당국은 머지않아 흑피옥문화에 대한 발표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당국은 오랜동안 흑피옥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흑피옥문화가 규명이 되면 전세계 고고학계에는 매우 큰 파장을 일어날 것이며, 인류사에 거대한 획을 긋는 문화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흑피옥의 연대 측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고고학은 물론 세계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흑피옥 최초 발견자인 김희용씨의 의뢰로 정건재 교수(전남과학대)가 9일 제시한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 옥)’의 연대가 1만4000여년 전이라는 추정 결론이 나왔다.

김씨와 함께 흑피옥을 연구해온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오른쪽)는 16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흑피옥을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AMS) 연구센터에 제공, 흑피옥에 사용된 염료의 성분 분석과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앞서 정 교수가 흑피옥 1점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1만4300년 전후 60년으로 나오자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일었다. 이같은 의심과 의혹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서울대 측에 검사를 맡긴 것이다.

소장 중인 흑피옥 20여점 가운데 9점을 AMS연구센터에 전달한 우 교수는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500~3000)에서 정식으로 발굴된 것과 모양이 똑같은 흑피옥 7점을 포함한 총 9점”이라며 “염료의 성분을 우선 분석한 다음 연대를 측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AMS연구센터장인 윤민영 교수가 참여하는 측정 결과는 7~8주 뒤 나올 예정이다.

우 교수는 “홍산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이번 흑피옥이 1만4300년 전후의 연대로 드러날 경우 ‘내몽골 흑피옥 문명’과 요서(遼西) 지역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문명(遼河文明)이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전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똑같은 모양의 흑피옥이 여러 점 나오기 때문이다.

또 “1만4000~6500년 사이로 나타난다면 흑피옥 문화가 지속돼왔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셈”이라면서 “ 모양이 똑같은 옥기가 나오는 흑피옥 시대(1만4300여년 전)와 홍산문화(6500~5000년 전) 사이의 공백기 약 8000년을 이어줄 수 있는 물증”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산문화 옥기와 똑같은 흑피옥의 연대가 홍산문화와 같은 시대로 확인된다면, 흑피옥 문화가 홍산문화로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요하문명은 황하(黃河) 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졌고, 요하문명으로 명명됐으며, 요하문명 지역에서는 중원지역에 없는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비파형동검 등 만주일대-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요하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우리 민족의 선조와도 곧바로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즉, 흑피옥 문화가 요하문명 지역으로 시간차를 두고 계승됐다면 ‘흑피옥문화→요하문명·홍산문화→한반도’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연대가 확인되면 세계 최초·최고 문명의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동시에 요서지역 홍산문화 선조들과의 직접적인 계승관계, 요하문명을 주도한 우리 민족 선조와의 직접적인 연결 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구석기 시대는 문명에 도달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기존 학설도 뒤집힌다. 최초의 인류문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 교수는 “김씨가 가지고 있는 흑피옥만 수백여점이다. 이번 서울대 조사결과를 토대로 더욱 광범위하게 연대를 측정하겠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흑피옥 관련 논문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흑피옥이 발견된 주변에는 신전, 벽돌식 무덤 등 고대문명의 흔적이 역력했다”며 “인류가 직립보행하기 전 반직립 상태의 고대문명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3월께 학술발표, 5월께 현장발굴 등이 이뤄진다”는 일정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