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마우로 지도의 위대한 비밀 ①
자료출처 : 통일일보 2013.06.21 10:56:14 서현우의 '세계사를 뒤흔든 한 장의 지도' (5)
이 장에선 또 하나의 중세 유럽의 지도를 통해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놀라운 비밀에 다가가 보겠다. 이 비밀은 단지 지도학 역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히 세계사를 새로 써야 하는 문제로 직결될 것이고, 나아가 천하전여총도가 진품이라는 강력한 배경적 증거가 될 것인바, 이 장이 끝날 무렵 독자들 모두가 나의 견해에 놀라움과 함께 전적인 동의를 표하리라 확신한다.
이 비밀에의 접근은 1450년경 지도제작자이자 카톨릭 수사인 프라 마우로에 의해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한 장의 지도를 통해서인데, 여기서 서술의 편의상 간단히 마우로 지도라 칭하기로 한다. 비밀은 지도상의 하나의 실마리에서 비롯되는데 매우 흥미로울 것인바, 독자들은 탐정의 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래 지도를 보자.
▲ 1450년경 베네치아의 카톨릭 수사 프라 마우로가 제작한 세계지도. 아랍의 영향으로 남쪽이 지도의 위이나 이해의 편의를 위해 북쪽을 위로 하여 지도를 돌린 것임. 구세계를 담은 지도로서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보인다. [자료사진 - 서현우]
마우로 지도는 지도학계에서 매우 유명한데, 그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나타나는 유럽 최초의 지도로 잘못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고지도인 혼일강리도가 현재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드러나는 세계 최고最古의 지도라고 잘못 알려져 있듯이 말이다. 게빈 멘지스의 저서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도 마우로 지도와 혼일강리도에 대해 각각 그러한 오류를 보여주고 있다.
실상 마우로 지도 이전 시기의 것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나타나는 지도는 여러 지도가 존재한다. 그만큼 우리가 앞장에서 확인한바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나타나는 지도로서 세계 최고最古인 베스콘테 지도를 비롯하여 알베르틴 디 비르가 지도와 안드레아 비안코 지도, 안드레아스 발스페르거 지도 등의 존재가 대중에 알려진 것이 근래의 일임을 알 수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이들 지도들은 모두 인터넷 시대의 결과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어쨌든 마우로 지도는 그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가 담긴 유럽 최초의 지도로 알려짐으로써, 가장 위대한 중세 지도라고 평가되어 왔다. 그러한 명성에 의해 현재 달에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분화구, ‘프라마우로 크레이터’가 있다.
마우로 지도는 아랍의 영향과 T-O양식이란 당시 유럽의 전통이 동시에 나타나는 지도인데, 전자는 남쪽을 지도의 위쪽 방향으로 삼은 것이고 후자는 원형구도 내에 세계를 나타낸 것으로 알 수 있다. 위 지도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현대 지도와 같이 북쪽을 위로 하여 지도를 돌린 것이다. 그러므로 마우로 지도가 제작되던 15세기 중엽까지 T-O 양식의 마지막 유습으로서 원형구도가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원형구도 양식에 구세계 전체를 담은 것으로 인해 앞서 살펴 본 베스콘테 지도완 세부적인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외형상의 인상이 얼핏 유사해 보인다.
마우로 지도는 동일 내용의 2본이 알려져 있는데 하나는 1450년경 제작된 원본지도로서 위에 소개된 지도이고, 또 하나는 포르투갈 왕 알폰소 5세의 거듭된 요청에 의해 1459년 프라 마우로와 그의 조수 안드레아 비안코에 의해 다시 제작된 사본지도인데 이 지도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알폰소 5세는 유럽역사에서 대항해 시대의 시원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 유명한 항해왕 엔리케 왕자의 조카였다. 여기서 알폰소 5세의 행위를 통해 당시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남단을 통한 인도항로 개척에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데다, 더하여 외부 세계의 지도를 확보하기 위해 포르투갈이 경향 각지에 외교관과 밀사를 파견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실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당시 포르투갈은 멀리 동방에까지 스파이를 밀파하는 등의 온갖 종류의 지도 수집에 혈안이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러한 노력의 결과, 대항해 시대의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마우로 지도의 비밀에 다가가기 이전에, 우선 이 지도가 베스콘테 지도로부터 무려 130여 년 이후의 것임에도, 지도가 제작될 시점은 포르투갈의 희망봉 발견(유럽인 최초의 일로서) 40여 년 전이라는 사실을 환기하자. 또한 당시 포르투갈의 해상활동(유럽 지리상의 항해시기 선두주자로서) 영역이 아프리카 서해안의 허리에 해당되는 오늘날의 기니 만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아두자. 그러므로 마우로 지도는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를 담은 앞서 언급한 베네치아의 지도들과 함께 외부세계로(유럽 바깥)부터 베네치아로 건너온 모종의 지도들의 도움과 영향을 받았음을 쉬이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 하에 이제 마우로 지도로 시선을 돌려보자.
▲ 프라 마우로 지도의 아프리카 대륙 부분.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해협이 묘사되어 있다. [자료사진 - 서현우]
위는 마우로 지도의 아프리카 대륙 부분이다. 대륙의 형상이 실제와 많은 차이를 보이는 데다, 하단부가 인도양 쪽으로 반쯤 드러누운 형국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해 본다면 지형의 상대적 대응관계는 식별이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 하에 이제부터 마우로 지도의 비밀을 찾아 탐정의 눈길로 지도를 훑어보자.
이 지도의 비밀에 접근하는 실마리로서 실로 흥미로운 지형이 숨어 있을 것인바, 눈 밝은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륙 남단(인도양 방향의 꼬리 부분)의 지형에서인데, 마치 삼각형 형태로 분리되어 식별되는 지형이다. 바로 이 지형이 마우로 지도의 비밀의 문에 해당되는데, 오늘날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 등에 대응되는 지역으로서, 실제 아프리카 대륙의 해당 지역은 이와 같이 삼각형 형태로 식별될 수 없는 지형이다. 나아가 그곳을 이러한 지형으로 나타내는 지도는 이 마우로 지도를 제외하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강조하건대, 이는 베스콘테 지도, 비르가 지도, 비안코 지도, 발스페르거 지도, 그리고 혼일강리도와 대명혼일도 지도 등 14~15 세기 이 지역을 보여주는 어떤 지도들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마우로 지도의 그곳만이 삼각형 형태의 지형으로 식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그것은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대륙 본토와 맞닿아 있어야 할 삼각형 형태의 한 면을 해협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하나의 해협이 아프리카 남단을 동서로 관통하여 인도양과 대서양을 이어주고 있는 형상이다. 해협이 지도상에서 대각선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이 지도가 T-O지도 양식의 유습으로 원형구도에 맞추느라 아프리카 대륙 하단부의 지형이 찌그러졌기 때문이다. 이는 비그라 지도와의 비교를 통해서 쉬이 알 수 있다. 아래는 비그라 지도이다.
▲ 1411~1415년경 알베르틴 디 비르가 지도의 아프리카 대륙 부분. T-O지도 양식의 유습에 의한 동일한 원형구도임에도 마우로 지도의 형상과 달리 희망봉이 위치해 있는 아프리카 남단이 남쪽을 향해 있다. 당시대 지도로선 실제의 형상에 놀랍도록 가깝다. [자료사진 - 서현우]
▲ 프라 마우로 지도의 아프리카 남단. 실제 존재하지 않는 해협이 묘사되어 있다. [자료사진 - 서현우]
어쨌든 마우로 지도의 아프리카 남단에 나타난 가상의 해협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우로는 지도상의 그곳에 실재하지도 않는 해협을 또렷하게 나타냈다. 해협을 나타내는 선형엔 기백이 느껴지고 확신이 묻어 있다. 도대체 마우로의 이러한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그가 해당지역 묘사에 참조한 모본지도에 있다. 모본지도엔 그 해협이 또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다. 모본지도에 나타난 가상의 해협! 즉 비밀의 문이다.
재차 강조하자면 마우로의 시대엔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 사막 이남은 유럽인들에게 있어 여전히 미지의 대륙이었다. 그러므로 시대를 초월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전모를 보여주는 베스콘테 지도, 디 비르가 지도, 비안코 지도, 발스페르거 지도 모두는 현재 미스터리 지도로 간주되어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지도들의 아프리카 대륙 정보에 관한 원천은 결국 유럽의 바깥, 결론적으로 동아시아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들 지도의 제작자 중 발스페르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에다, 지금까지 우리가 줄곧 확인한 당시 베네치아 지도와 동아시아 지도의 상관관계가 잘 말해준다. 또 마우로 지도의 동아시아 부분을 통해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는 다른 장에서 기회가 있을 때 다루기로 하겠다.
이제 비밀의 문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자. 대체 그 모본지도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그 모본지도는 아프리카 남단에 실존하지도 않는 해협을 나타냈을까? 아프리카 남단 가상의 해협에 대응되는 그 일대의 실제 지형은 동안東岸의 남북방향을 따라 산맥과 고원이 비스듬히 누워있고, 서안엔 부시맨들이 사는 칼라하리 사막과 나미브 사막 등의 메마른 땅이 펼쳐진다. 큰 강조차 없는 그곳 일대엔 해협으로 오인할만한 어떠한 지형도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실제 아프리카 대륙 지도를 통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본지도는 왜 그곳에 해협의 존재를 또렷이 보여주고 있을까? 모본지도의 실체는 무엇이고, 또 그 해협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역사상의 한 사건이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 실마리를 따라 가다 보면 독자들은 매우 놀랄 것이고, 곧 이어 천하전여총도가 얼마나 위대한 지도인가를 새삼 깨달을 것이다.
여기서 역사상의 한 사건이란 1520년 4월 초순, 남반구의 어느 대륙 동남부 연안바다에서 일어난 선상반란과 진압을 말한다.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총 5척으로 구성된 스페인 함대의 총사령관인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선상에서 동요하는 선원들을 향해 일갈하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가 찾고 있는 해협은 여기서 머지않은 곳에 실재한다. 나는 그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 나는 마누엘 왕의 지도를 통해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확신한다.”
마젤란은 자신의 조국 포르투갈 궁정의 비밀서고 테소라리아에서 훔쳐본 지도를 떠올리며 그렇게 외쳤던 것이다. 마젤란의 이 외침은 오늘날 마젤란을 다룬 거의 모든 전기 작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나아가 마젤란이 훔쳐본 지도는 테소라리아에서도 극비로 분류된 어떤 지도였다. 혹자는 마젤란이 항해에 나설 시 해협의 위치가 나타나는 항해도를 이미 갖고 있었다고도 한다. 마젤란의 이 사건은 마우로 지도의 사본지도가 알폰소 5세의 요구에 의해 리스본으로 건너간 지 60여 년이 지난 시기로 마누엘 왕의 통치 시기이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1차 항해가 있은 지 30여 년이 지난 시기의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포르투갈 궁정의 비밀서고를 만나게 되고, 앞서 언급한 포르투갈 왕 알폰소 5세와 마우로의 관계를 떠올린다. 이는 당시 포르투갈과 베네치아의 관계를 잘 말해주는데, 15~16세기의 중세 유럽세계에 있어서 포르투갈은 베네치아와 더불어 모든 지리정보의 중심지이자 원천지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한 포르투갈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지도제작자인 그의 동생 바르톨로뮤 콜럼버스와 함께 7년간 활동한 곳이기도 했다. 더불어 베네치아는 베스콘테 지도, 디 비르가 지도, 비안코 지도, 마우로 지도의 산실이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를 격려하고 고무한 지구구체설로 유명한 파울로 델 파초 토스카넬리가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베네치아의 파도바대학교는 피렌체 출신의 토스카넬리가 졸업한 학교이자, 교수로 재직하던 학교로 유명하다.
어쨌든 마젤란은 반란을 평정하곤 훗날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될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공인역사상 대서양으로부터 태평양으로 진입한 최초의 인물로 남는다. 그렇다! 마우로 지도의 해협은 가상의 해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남아메리카 대륙 남단의 마젤란 해협이었다. 단지 신대륙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대의 인물인 마우로가 아메리카 대륙을 묘사한 모본지도를 아프리카 대륙으로 오인했을 뿐이다. 그 증거가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난 마우로 지도이고, 또 그곳에 나타난 해협이다. 마우로 지도상의 해협과 실제의 마젤란 해협의 상대적 위치를 비교해 보라. 삼각형 형태의 지역은 바로 남아메리카 남단의 ‘불의 땅’, 즉 ‘티에라 델 피에고’로 알려진 파타고니아 지방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우로 지도상의 아프리카 대륙 대서양 연안으로 눈을 돌려보자. 지도상의 그곳에는 2개의 만灣이 나타나는데, 위의 것이 아래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고, 또 훨씬 긴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형은 아프리카 대륙 그곳의 실제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 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과는 더더욱 달라 보인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지형을 처음 대할 때 나는 마우로 지도의 아프리카 대륙이 남아메리카 대륙의 오인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솔직히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겐 무척이나 까다로운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선 비그라 지도와 비교해 보았다. 비르가 지도는 마우로 지도보다 한 세대 이상에 해당되는 35~40년이나 앞선 시기의 지도임에도, 아프리카 대륙의 전체 형상이 실제와 유사하고 희망봉이 위치한 아프리카 남단이 정확히 남쪽을 향해 있다. 이는 마우로 지도의 그것에 비해 훨씬 실제에 가까운 형상으로, 누군가의 해안선 탐사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비그라 지도 또한 역사의 정설을 혼란시키는 미스터리 지도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비그라 지도와 비교해 볼 때 마우로 지도의 아래쪽 작은 만은 넓이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지도상에서 오늘날의 기니 만에 대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상대적 위치에 의해 그렇게 추정되는데다, 마우로 지도상의 찌그러진 형상의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해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고무판 위에 그려진 지도를 가정한 비유인데, 원형구도란 조건 하에서 비율이 어긋나는 바람에 전모를 보여주기 위해 압력에 의해 눌린 상태라고 설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마우로 지도에 보이는 위쪽의 넓고 긴 지형의 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곳에 대응되는 지역은 세네갈, 모리타니, 말리와 그 주변 지역인데, 실제의 지형엔 만에 대응될 수 있는 어떠한 지형도 없다. 한마디로 완전히 달랐다. 이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해당 지역에 대한 이러한 묘사(넓고 긴 만)는 한마디로 두 대륙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단순 가상의 산물일까? 결론적으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 또 마우로 지도의 아프리카가 아메리카 대륙의 오인이라는 데 대해서 다음 장에서 더욱 분명한 증거와 함께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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