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兆 굴리는 큰손 "한국 대기업, 이젠 가지치기해야"
자료출처 : 조선비즈 2016. 11. 19. 김지섭 기자
연간 141조원(1200억달러)의 자산을 주무르며 기업을 사고파는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 블랙스톤, 칼라일과 더불어 세계 3대 사모투자펀드(PEF)로 꼽히는 곳이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라는 긴 이름의 금융회사다.
KKR은 40년 전 이 회사를 만든 3명의 창업자 제롬 콜버그, 헨리 크래비스, 조지 로버츠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KKR을 전설적인 투자 회사로 만든 일화가 1989년 세계적인 음식료업체 RJR나비스코를 당시로는 역대 최고액인 250억달러에 인수한 거래다. 그 기록은 무려 17년간 깨지지 않았다. 뒷얘기를 담은 책이 '문 앞의 야만인들'이란 스테디셀러다. 저자들은 책에서 KKR의 창업자들을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만인(barbarian)'으로 묘사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거물 조지 로버츠(72) KKR 회장이 처음으로 국내 강연 무대에 섰다. 17~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제7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의 둘째 날 세션 '글로벌 자금 어디로 흐르고 있나'에서 로버츠 회장은 브루스 플랫 브룩필드 자산운용 대표, 세이커 누세베 헤르메스 자산운용 회장, 강면욱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과 함께 글로벌 저성장 시대의 투자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인터뷰를 위해 가까이서 만난 로버츠 회장은 침착하고 차분한 인상에 체구도, 목소리도 크지 않은 노신사였다. 로버츠 회장은 "'문 앞의 야만인들'은 팩트(fact·사실)를 기반으로 당시의 뒷이야기를 잘 구성한 책일 뿐, 나는 야만인처럼 생기지도, 행동하지도 않기 때문에 야만인이란 별명은 좀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경기 민감 업종보다는 소비재 기업에 투자"
조지 로버츠는 40년 전인 1976년 서른두 살에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박차고 나와 사촌, 직장 상사와 사모펀드 운용사 KKR을 뉴욕에 세웠다. KKR의 주 특기는 당시 업계에서 생소했던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자신보다 몸집이 몇 배나 큰 회사들을 인수·합병(M&A)해서 가치를 높인 후 매각해 차익을 얻는 것이었다. LBO는 인수 자금 중 일부만 자기 돈으로 하고 대부분의 자금은 빌려 회사를 사들인 후에 인수 회사의 돈으로 대출 원리금을 갚는 인수 방식을 말한다. 회사를 사들인 후에는 이자 갚을 돈을 구하기 위해 회사의 군살을 빼고, 직원들을 해고한다. 사모펀드에겐 돈 벌 기회였지만, 당하는 기업에겐 고통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KKR은 지난 40년간 345건의 사모펀드 거래를 통해 5800억달러(약 687조원)의 기업 가치를 창출했다. 현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15개국에 진출해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108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연간 매출액을 다 합하면 2000억달러(약 237조원)에 달하고, 근로자 수가 72만명에 이른다.
지난 40년간 기업을 사고파는 일에 뛰어든 그는 투자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밝혔다. 먼저 조선·철강·해운 같은 경기 민감 업종보다는 음식료와 같은 소비재 산업에 투자를 집중한다. 로버츠 회장은 "40년 투자 경험에서 볼 때 조선·해운 등의 업종은 투자 시기를 잘못 맞추면 심각한 손실을 본다는 걸 안다. 이 업종들은 가격이 아주 바닥에 떨어졌을 때나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투자할 때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중시한다. 그는 "해외 투자를 할 때는 전체 들이는 노력의 90%를 전략적 파트너를 고르는 데 할애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더 많은 투자 하고 싶다"
40년간 매의 눈으로 기업을 바라본 로버츠 회장은 "한국 대기업 중 지나치게 다변화를 추구한 기업들이 있는데 이제는 좀 잘라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어떤 기업이든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 사업 부문이 불필요하게 비대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육아에 비유하자면 12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은 2명의 자녀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양육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중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로버츠 회장은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2009년 오비맥주를 18억달러에 사들인 후 4년여 만에 원래 주인인 AB인베브에 58억달러를 받고 되팔아 40억달러(약 4조7000억원)가량의 차익을 남긴 일로도 유명하다. 그동안에도 1~2년에 한 번꼴로 사업차 한국을 방문해왔다.
로버츠 회장은 한국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한·중·일을 비교할 때, 한국과 일본은 중국보다는 성장 잠재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안정성과 산업 성숙도 면에서는 중국을 압도한다”면서 “한국에 현재 5억7000만달러(약 6700억원)를 투자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로버츠 회장은 “KKR과 같은 사모펀드는 자금 제공,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향상 등의 부문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버츠 회장의 한국 투자 전략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대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비핵심 계열사를 매각할 때 이를 사들이는 것이다. 로버츠 회장은 “비핵심 계열사가 모회사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성장할 수 없었던 점을 포착해, 인력을 충원하고 이해 당사자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줘서 성장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또 하나는 해외 진출을 원하는 국내 기업의 해외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로버츠 회장은 ‘야만인’이란 험한 별명과 달리 사회 공헌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1985년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는 ‘로버츠 개발 기금’을 운용하면서 50여개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개인 재산만 42억달러(약 5조원)에 달해, 미국의 126위 부자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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