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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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훈-Hun)족에 의해 헝가리(Hungary)에 건설한 아틸라 제국

자연정화 2018. 6. 17. 21:42

흉노(훈-Hun)족에 의해 헝가리(Hungary)에 건설한 아틸라 제국

 

아틸라(라틴어: Attila, 고대 노르드어: Atli 아틀리→끔찍한 자, 독일어: Etzel 에첼[*], 406년 ~ 453년)는 훈족 최후의 왕이며 유럽 훈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받고 있었을 때 우는 아이 보고 <일본 순사가 온다>라고 말하면 울던 울음을 그쳤다고 하는데, 로마가 훈족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도 똑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울고 있는 로마의 아이에게 <훈족이 쳐들어오고 있다>라고 하면 울던 울음을 그친다고 했다. 그 정도로 훈족은 유럽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송한 나라는 독일과 미국이다.

독일에서는 ZDF 방송에서 < 역사의 연결고리 > 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했는데, 훈족(Huns)의 침입으로 자신들의 조상인 게르만 민족이 대이동을 시작했다고 했고 훈족(Huns)은 한반도의 신라(新羅)에서 출발했다고 하면서 여러 역사 유물들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 Atilla -- The King of Barbarian > < Barbarian -- Huns > 라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히스토리 채널에서 1997년 만들어 방송하였는데 저는 2008년 3월 18일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송되는 내용을 보았다.

 

유럽의 정세

이탈리아를 장악한 로마제국은 로마 공화국(BC 508년 ~ BC 27년 ) 시대를 거치면서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여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로마 제국 시대( BC 27년 ~ AD 395년 ) 시대를 거치면서 로마 제국은 서서히 몰락의 길로 가고 있었다.

 

헝가리(Hungary)지역은 BC 9년 경에 이미 Pannonia 라는 이름으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원주민이었던 사르마티안 (Sarmatian), 트라시안(Thracian -Dacian), 반달족(Vandals)들이 살고 있었다.

313년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포교를 시작하여 이 지역에서는 기독교가 성행했었다. 참고 : 로마 제국

 

375년 동유럽지역에 정착하고 있던 흉노(훈)족들은 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볼가강을 건너 동고트를 공격하면서 유럽 전체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 The Age of Migrations : 375 년 ~ 800 년 )과 함께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리게 된다.

독일 지역에 살고 있던 동고트 사람들은 서고트로 이동하게 되었고 서고트 사람(100 만명)들은 도나우 강 남쪽의 로마 영토로 이동하게 되었다.

 

378년 서고트족들은 로마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더 많은 서고트족들이 로마의 영토로 이주하게 되었다. 힘이 없는 로마 황제로부터 정식적인 이주를 허가 받게 되자.

379년부터 395년 사이에 주변의 바바리안(Barbarian), 고트족(Goths), 알란족(Alans), 훈족(Huns), 마르코마니족 (Marcomanni), 쿠아디족(Quadi) 등의 집단이 <Pannonia>지역으로 많이 이주하여 들어 왔다.

 

그러나 이 지역에 400년부터 훈족(Huns)이 들어 오게 되자 다른 종족들은 겁을 먹고 다시 남쪽으로 이주하여 이탈리아 북부지역까지 도망가게 되었다.

423년 훈족(Huns)은 헝가리(Hungary)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유럽 전역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흉노(훈-Hun)족에 의해 헝가리(Hungary)에 건설한 아틸라 제국

 

<< 375년부터 469년까지 지속된 아틸라 제국 >>

 

375년 동유럽지역에 정착하고 있던 흉노(훈)족들은 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볼가강을 건너 동고트를 공격하였다.

동고트 사람들은 서고트로 이동하게 되었고 서고트 사람(100 만명)들은 도나우 강 남쪽의 로마 영토로 이동하게 되었다.

 

378년 서고트족들은 로마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더 많은 서고트족들이 로마의 영토로 이주하게 되었다.

 

382년 로마는 도나우 강 남쪽에 정착한 서고트 인들에게 자치를 허용했다.

 

406년 아틸라(Attila)는 훈족의 문주크( Mundzuk ) 왕(王)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외교 관례대로 인질상태의 어린 아틸라(Attila)는 410년경부터 서로마 제국의 수도인 라벤나(Ravenna)궁정에서 자라면서 로마식 교육을 받았다.

 

410년 서고트족 출신의 아이릭(Alaric)왕(王)이 로마를 3일간 약탈하였다.

 

423년 훈족(Huns)은 헝가리(Hungary)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유럽 전역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425년 고트족 출신의 요안네스(Joannes)가 서로마 제국에 항거하면서 자칭 황제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로마의 장군이었던 <아에티우스>는 훈족의 왕이었던 <루아-Rugila>에게 6만의 훈족 군대를 빌려 로마의 수도였던 라벤나(Ravenna)로 진격하였다.

<아에티우스>가 이끄는 훈족의 군대가 로마의 수도인 라벤나(Ravenna)에 도착하기 3일 전에 요안네스(Joannes)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요안네스(Joannes)는 처형되었다.

 

433년 로마에서 정식으로 훈족에게 지금의 헝거리,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지역인 판노니아(Pannonia) 지역을 내주었다.

 

434년 훈족의 왕이었던 <루아-Rugila>가 사망하자, 훈족의 전통에 따라 아틸라는 형인 <블레다 : Bleda>와 함께 왕위에 올랐다.

 

435년 당시 동로마 제국은 420년부터 훈족에게 매년 공물을 상납하였는데, 공물을 바치는 날짜를 잘 지키지 않아서 훈족은 동로마 제국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동로마 제국에서는 공물을 2배로 올리기로 약속하고 아틸라(Attila)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436년 서로마 제국의 영토인 골(Gaul)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아에티우스> 총독이 지역내의 불간디(Burgandian) 사람들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훈족에게 군대를 요청했다.

훈족의 군대는 이 지역에서 2만명의 불간디(Burgandian)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버리는 참혹한 폭동진압을 하였다.

 

443년 형인 <블레다 : Bleda >가 사망하자 <아틸라>는 훈족의 단일지도자가 됐다.

 

443년 아틸라는 지금의 그리스 지역인 트리카나 (Thrace) 지역을 침략하여 주변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447년 아틸라는 지금의 그리스 지역인 테로모필레 (Thermoplae)지역을 침략하여 주변 도시들을 약탈하니까,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 Theodosius>는 지금까지 조공으로 매년 바치던 황금의 량을 2배로 올려주겠다고 함으로 아틸라는 매년 2,100 파운드의 황금을 받는 조건으로 군대를 철수하였다.

 

450년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 - Valentinianus>에게는 <호노리아 - Honoria>누나가 있었는데, 누나가 결혼을 하면 누나의 남편과 정치적으로 경쟁을 해야 함으로 누나를 결혼시키지 않고 혼자 살게 하였다.

그런데 450년 <호노리아>는 동생을 황제자리에서 밀어내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서로마 제국의 황제는 누나를 동로마 제국의 수도원으로 추방해 버렸다.

추방된 <호노리아>는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아틸라>에게 자신의 금반지를 보내어 구원을 요청했다. 당시 반지를 보내는 것은 구혼을 뜻했다.

 

450년 <아틸라>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 Theodosius> 와 서로마 제국의 황제인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게 <호노리아>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서로마 제국의 영토인 골(Gaul)지역을 결혼 지참금으로 요구했다.

420년부터 조공을 받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 Theodosius>는 찬성을 했으나.

서로마 황제인 <발렌티니아누스 3세 - Valentinianus>는 아틸라의 요청을 거절하고 <호노리아>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켜 버렸다.

 

450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 Theodosius>가 죽고, 새로운 황제 마시안(Marcian)이 등극했다.

새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마시안(Marcian)은 지금까지 훈족에게 매년 바치든 조공을 거절했다.

화가 난 아틸라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 - Valentinianus >의 서로마 제국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451년 4월

30만명으로 추정되는 아틸라(Attila) 대군은 현재의 독일과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 지역을 공격했다. 아틸라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수많은 도시들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서유럽의 중심부를 초토화 시켜 버렸다.

 

그러자 서로마 제국에서는 <아에티우스>를 총사령관으로 아틸라 군대에 대항했다.

서로마 제국의 군대는 골(Gaul)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알란족의 왕(王) 이었던 상지방(Sangiban) 이 통치하고 있었던 근거지를 미리 점령하고 카탈루니안 평원( Catalaunian Plains )에서 훈족의 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451년 6월 20일

프랑스 트루아 ( Troyes ) 시(市) 지역에서 <살롱 대전투 -- 카탈루니안 전투 >가 벌어졌다.

서로마 제국의 연합군대 ( 주력부대 서고트족 )가 30만명,

아틸라가 지휘하는 연합군대 ( 주력부대 동고트족 )가 30만명,

이렇게 많은 인원이 전투에 참가하여 15만명의 전사자를 낳은 대규모 전투를 벌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451년에 벌어진 <살롱 대전투 -- 카탈루니안 전투 >는 명목적으로는 서로마 제국과 훈족이 싸운 전투이지만, 실제 전투에 참가하여 죽은 병사들은 서로마 제국을 위해 싸운 서고트족과 아틸라 군대를 위해 싸운 동고트족이었다.

즉 독일사람 ( 동고트족 과 서고트족 )들 끼리 남의 전투에 대신 참가하여 자신들만 많이 죽게 된 전쟁이었다. 아틸라는 상방의 막대한 피해를 목격하고, 이곳에서 서로마 제국 군대와의 마지막 승부를 피하고 자신의 군대를 본거지인 현재의 헝가리(Hungary) 부다페스트 (Budapest)로 철수했다.

 

<< 452년 아틸라가 이탈리아반도 북부지역을 공격한 통로 -- 베네치아의 위치 >>

 

452년 다시 서로마 제국을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이탈리아 반도로 직접 쳐들어 갔다.

아틸라는 아퀼레이아( Aquileia )점령을 시작으로 파두아 ( Padua ), 베로네 ( Verona ), 밀란 ( Milan ), 피비 등 이탈리아 북부 전역을 휩쓸었다.

 

당시에 훈족의 공격으로 파괴된 도시를 떠난 난민들은 훈족이 추격할 수 없는 늪지대로 피난하였다. 훈족의 군대들은 늪지대에서는 말이 늪지대에 빠져 더 이상 난민들을 추격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때 훈족의 추격을 피해 늪지대 속으로 들어간 난민들이 <베니 앗시움 - Veni Etiam - Venni Atsium - 나도 여기까지 왔다 >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이 이곳의 지명으로 발전하게 된 유래가 되었다.

이곳은 영어식으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하고 이탈리아식으로는 베네치아 (Venezia)라고 한다. 훈족을 피해 이곳에 정착한 난민들이 건설한 도시가 오늘날 이탈리아 베네치아이다.

 

<< 452년 아틸라가 이탈리아반도 북부지역을 공격하는 모습의 그림 >>

 

이탈리아 북쪽 지역을 완전히 파괴당한 후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 - Valentinianus >는 로마 카토릭 교회의 교황인 레오(Leo)를 특사로 보내어 아틸라와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협상의 조건은 아틸라의 군대가 이탈리아의 침공을 중지하는 조건으로 서로마 제국에서는 엄청난 보물(황금)을 아틸라에게 받치는 것이었다.

협상이 성공하여 아틸라 군대는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교황 레오(Leo)는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부터 대제라는 칭호를 하사 받았다.

 

452년 이탈리아 북부를 완전히 초토화하여 약탈한 보물들과 서로마 황제로부터 받은 황금을 챙겨들고 아틸라 군대는 자신들의 근거지인 헝거리의 부다페스트로 돌아 왔다.

 

<< 교황 레오와 아틸라 대왕이 담판을 벌리는 장면의 벽화 그림 >>

 

453년 아틸라는 게르만족 제후의 딸인 <일디코- Ildico>와 결혼을 했는데, <일디코- Ildico>가 자신의 가족이 훈족에게 살해된 것에 앙심을 품고 잠든 아틸라를 살해하여 아틸라는 결혼식 다음날 아침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아틸라는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는데 그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틸라의 무덤은 테이스(Theiss - Tisza ) 강을 막아 물길을 돌린 후에 강바닥에 무덤을 만들고 강물을 다시 재자리로 돌려 두었기 때문에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강은 유럽의 우크라이나 ( Ukraine )에서 출발하여 루마니아,(Romania), 헝가리(Hungary), 슬로바키나(Slovakia), 세르비아(Serbia)를 지나가는 강이다.

 

강력한 지도자인 아틸라가 죽자 그의 아들인 <덴기지크 : Dengizich >가 훈족의 지도자가 됐으나, 구심점을 잃은 훈제국은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들어갔다.

 

454년 로마의 실권을 쥐고 있던 <<아에티우스>가 로마의 황제인 <발렌티니아누스 3세 - Valentinianus >에게 살해되었다.

 

455년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 - Valentinianus >가 자신의 군사들이 활쏘기 시합을 참관하고 있던 중에 훈족의 장수 2명에 의해 살해 되었다.

 

469년 훈족은 동로마 제국과 합세한 게르만 민족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뒤 역사에서 사라졌다.

 

476년 게르만 민족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

 

훈족이 유럽을 지배한 시기는 375년부터 469년 까지 약 100년간이었다.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훈족들은 헝가리를 중심으로, 루마니아, 프랑스, 스위스 지역에 부족단위로 자리잡고 정착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루마니아의 세켈리족(族)은 자신들이 훈족 아틸라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곳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드라큘라 (Dracula) 전설은 아틸라(Attila) 왕(王)의 후손으로 15세기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 출신의 <블라드>의 이야기인데, 1897년 영국의 소설가가 소설로 작품화한 것이다.

 

 

헝가리( Hungary ) 와 한국( Korea )

 

피는 물보다 진하다.

옛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이 민주화 될 때 한국과 가장 먼저 국교를 수립한 국가가 헝가리(Hungary)이다. --- 노태우 대통령시절의 1989년 2월1일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11월 22일 헝가리(Hungary)의 부다페스트를 방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