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예맥족, 한족)의 형성과 발전과정
우리민족은 흔히 한민족이라고 하며 단일 민족이라 하지만, 그 시초를 알아보면, 두 개의 민족이 하나의 민족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두 개의 민족은 바로 예맥족과 한족이다. 두 종족은 처음에는 구석기 시대인 7000여년전 지구의 빙하기이후 이동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길림성과 동북3성 지방에 오게 된 것이다.
그 이동을 보면 구석기 시대인 7000여년전 지구의 빙하기 이후 바이칼호의 인류가 이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같은 민족이였으나 동쪽으로 이동하며 여러 곳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중동, 동쪽 등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바이칼호에서 동으로 이동을 한 민족은, 예맥족, 한족 뿐 아닌, 몽고족, 만주족, 거란족, 흉노족, 허저족, 저, 강, 선비등 17개 민족에 달하였다. 그 이동에 주류를 이룬 것이 예맥족과 한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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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에서 파란 물이고 어머니의 물이라 하는 흑룡강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예맥족의 경우, 흑룡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흑룡강과 흙탕물인 송화강이 만나는 지금의 동강시에서 다시 송화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옛말에 강 하류로간 민족은 망하고, 강 상류로 간 민족은 흥한다는 말이 있듯이, 송화강 상류로 올라가 예맥족의 터를 잡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얼빈, 자무스, 길림지역에 거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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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족이 세운 나라는 부여로, 지금의 송원, 농안, 길림, 삼차진 근처에 그 자리를 잡고있으며, 후에 부여의 고주몽이 요령성에서 고구려를, 고구려의 온조가 하남에서 백제국을 세우기에 이른다.
한족의 경우, 예맥족과 함께, 흑룡강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며, 두 개의 부류로 나뉘게 된다. 그 하나는 목단강을 따라 내려가 경박호에서 단군조선이 된 한족이며, 다른 하나는, 우수리강을 따라 남하하여 싱칼호를 지나, 남하하여, 삼한을 이루게 된다. 후에 가야, 신라, 백제의 근본이 되며, 백제의 경우, 토착민인 한족과, 지배계층인 예맥족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내부 분쟁이 끊이지 않기도 하였다.
우선 우리민족이 세운 나라 중, 고조선에 대해 알아보자. 고조선의 건국신화는 한국의 모든 사람이 알 정도 유명하다. 하느님의 아들 한웅이 한인을 졸라, 땅으로 내려가고 싶어하여, 천부인3개와 무리 3천명을 대리고 신시(경박호근처로 추정)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고,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자하여, 마늘과 쑥으로 백일 햇빝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있다하여, 곰은 참아 여자가되어, 한웅과 웅녀와의 아기가 1대 단군이 한백겸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단군조선은 BC 2333년에서 BC 194년까지 있었으며, 그 연나라 사람 위만에 의해 위만조선이 이어지다. 한무제와의 갈등에서 내분으로 인해, 우거왕이 사망하여, 끝이 나게 된다. 이에 한무제는 4군현(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현토군)을 설치하여 다스렸으나, 토착민의 공격으로 군현은 사라지게 된다. 낙랑군의 경우, 중국문화가 한반도에 들어오게 된, 시초라고 볼 수가 있으며, 오랜 시간동안 중국문화가 낙랑군에 의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부여는 예맥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 '동사강목'의 경우 BC 1286년으로 기록이 되어있으나, '동이전'에 의하면 BC 451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장소는 길림으로 추정되고 있고, 우두머리 안은 단군의 후손으로 보고도 있다. 부여는 호족과 일반인, 노예로 이루어 졌으며, 대가의 부족장 중에서 왕이 선출되었고, 제가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했다. 대가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이 있어 사출도를 지켰다. 부여는 동부여와 북부여가 있는데, 해부루 왕이 꿈에서 만난 해모수가 가섭원으로 가라하여, 지금의 아성, 송원 또는 삼차진으로 간 부여가 동부여이고, 북쪽으로 간 부여를 북부여라고한다.
부여의 왕 중 해부루 왕은, 경박호에서 금개구리모양을 한 아이를 데리고와 자식처럼 키웠는데, 이를 금와왕이라 한다. 이 금와왕의 부인 중 유화라는 부인이 빛이 따라다니며 임신을 하였는데 알을 낳게 되었고, 그 알에서 나온 사람이 주몽으로, 뛰어난 능력을 어려서부터 보였다. 이를 시기한 전비의 아들인 대소가 주몽을 죽이려 하자, 부하 8명과 도망을 하여, 송양국에서 소서노라는 부인을 두고 요령성의 오녀산성, 지금의 졸본성에 구려국을 세우게 된다. 이를 우리는 고구려라 한다.
이 때가 BC 37년이다. 고구려는 후에 흥성하여, 고구려의 뿌리국이라 할 수 있는 부여국까지, 멸하게 한다. 고주몽의 아들의 부여국에서의 유리와, 소서노의 아들 비류, 온조가 있었는데, 유리가 부여국에서 칼증표를 들고 주몽을 찾아오니, 제2대 고구려의 왕이 되었고, 황조가로 우리에게 유명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멸망은 내분에 의해 파멸하며, 그 시기는 668년이다.
그리고 유리의 등장으로 위협을 느낀 소서노와 두아들이 남하하여, 하남으로 와 10명으로 십제라는 나라를 온조가 세우고, 비류는 미추홀 지금의 인천에서 90명을 대리고 갔다. 기반을 잡은 한민족과의 갈등과, 바다근처이기에 짠 흙으로 농사가 어렵자, 다시 온조에게 가게된다. 이리하여 모두 100명의 사람이 나라를 세우게 되어, 이를 백제라하고, 이때는 BC 18년으로, 지금의 하남인 위례성에 자리를 잡았다. 그 문화가 특히 찬란하게 피었던 백제는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의자왕대에 멸을 하게 된다.
신라의 경우 고조선이 멸망하여 그 일부가 경상도 지역으로 들어와 토착민들과 함께, 연맹체로 시작하여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설화에 의하면 역시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에 의해, 나라가 시작되며, 신라는 BC 57년에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후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통일하게 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민족은 예맥족과 한족의 결합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이들의 나라에는 부여,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 고구려에서 나온 백제와, 신라라는 국가를 형성하여 발전을 해왔다.
예맥[濊貊]
고대 만주지역에 거주한 한국의 종족 명칭.
예(濊)와 맥(貊)으로 나누어 파악하기도 한다. 예·맥·예맥의 상호관계와 그 종족적 계통에 관해서는 일찍부터 논란이 되풀이되어 왔다. 예맥에 대해서는 예와 맥으로 나누어 보거나, 예맥을 하나의 범칭(汎稱)으로 보는 견해, 예맥은 맥의 일종이며, 예는 예맥의 약칭이라는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일찍이 정약용(丁若鏞)은 맥은 종족 명칭이고, 예는 지역 또는 강의 이름이라고 보아, 예맥은 맥족의 아홉 갈래(九貊) 중의 하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하였다. 능순성(凌純聲)도 예는 예수(濊水)지역에 거주했던 맥족이라고 하여 동일하게 이해하였다.
미지나(三品彰英)는 선진(先秦)문헌에 보이는 맥은 북방족에 대한 범칭이며, 예는 진대(秦代)의 문헌에서 처음 보이는데, 한대(漢代)에 범칭되는 예는 고구려·부여·동예를 포괄하는 민족명이라고 보았다. 예맥이라는 호칭은 현실적인 민족명과 고전적인 북방족에 대한 범칭인 맥을 결합시킨 편의적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하면서, 고구려를 지칭한 맥은 민족명인 예족 내의 특정한 부족명이라 하였다. 곧 한대 이후의 맥은 예와 동일한 계통의 실체라 하였다.
윤무병(尹武炳)은 예맥이라는 명칭은『사기(史記)』에서부터 사용되었는데, 예족과 맥족을 합친 범칭이 아니라 맥족인 고구려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한대 이후의 예와 (예)맥은 동일계통 내에서 각각 구분되어졌던 실체였다고 보았다.
한편, 예일부(芮逸夫)는 한민족을 예맥과 한(韓)의 양계로 구성되었다고 하면서, 예맥족 중 예족은 한반도 중북부와 송화강·길림·눈강(嫩江)지역 등에 살았고, 맥족은 산동·요동·발해만 연안 등에 거주해, 거주지역의 분포에 따라 예와 맥이 구분되었다고 보았다. 김정배(金貞培)도 예·맥·한은 동일계 족속으로서 그 분포지역의 차이에 따라 각각 구분되어졌다고 보았다.
이종설(異種說)의 대표적인 주장자는 미카미(三上次男)인데, 그는 예족은 유문토기문화(有文土器文化)를 영위했고, 생활방식에 있어서 수렵·어로의 비중이 컸던 고아시아족(古Asia族)계통이고, 맥족은 무문토기문화(無文土器文化)를 남긴 퉁구스족계통으로 파악하였다. 미카미의 주장은 빗살문토기문화와 무문토기문화가 같은 시기의 것이 아니라 시대를 선후하는 문화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짐에 따라 부정되어졌다.
한편, 이옥(李玉)은 맥족과 예족은 원래 중국의 산시성·허베이성 방면에 각각 거주하다가 점차 동으로 이동해왔는데, 서기전 3세기 무렵 장춘·농안 방면에 먼저 정착해 있던 예족은 이어 이동해온 맥족에게 밀려 남으로 왔다가 고조선에 쫓겨 요동군(遼東郡)에 예속하게 된 것이 예군(濊君) 남려(南閭)의 집단이었고, 이 예의 일부가 맥족에 흡수되어 서기전 2세기경 새로운 종족인 예맥이 성립했으니 이것이 고구려족(高句麗族)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백가쟁명 식으로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어 왔다. 현재 학계에서는 예맥이 예와 맥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아닌 하나의 계통이더라도 다른 갈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예와 맥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서로 구분이 되지만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맥 내부의 여러 집단 중에 우세한 집단이 등장하여 주변 세력을 병합하면서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예맥이 고조선(古朝鮮)을 구성하는 종족집단을 이루었고,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했던 한족(韓族)과 더불어 한민족 형성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한편 고구려의 종족기원과 관련하여 예·맥·예맥이 많이 주목되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현재로서는 정설이 없다. 고구려의 종족 기원에 대해서는 예족설, 맥족설, 예맥족설, 예맥족에서의 분화설, 원래는 예족인데 명칭상 맥족이라는 설 등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제시되었다. 어느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고 고구려 종족은 지역에 따라 대수맥(大水貊)·소수맥(小水貊) 등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2세기 요동(遼東)에서 청천강에 이르는 지역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주조철부(鑄造鐵斧) 등 초기 철기문화를 사용하는 집단이 거주했다. 이들은 늦어도 기원전 3세기 말에는 철기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석묘(積石墓)를 축조하면서 주변지역과 구별되는 문화적 전통을 수립하였다고 추정된다. 철제 농기구의 보급은 농경기술의 발달과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을 것이다.
나아가 인구의 증가와 사회분화를 촉진시켜 혼강(渾江)과 압록강 중류 지역 각지에서 점차 새로운 정치체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태동시켰다. 고구려 발흥지인 혼강과 독로강(禿魯江) 유역을 포괄한 압록상 중류 유역에 거주하던 주민은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점차 맥족이라고 불렀다. 부여 방면에서 이주해 온 일부 예족이 이에 융합되었다. 이어 고구려의 성장과 함께 인근의 여러 족속들이 흡수되어 고구려가 확대되었다.
고구려는 주어진 환경의 열악성과 경제적 기반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팽창정책을 구사했다. 이 과정에서 예맥계 종족이 주민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두만강·대동강·요하·송화강 유역을 차례차례 제압해 나가면서 이들 주민들을 고구려 국가지배구조 내로 편입시켰다. 고구려는 동질성을 인정할 수 있는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우선적으로 확보하여 전략거점화하고, 이들을 고구려인으로 동화·통합시키는 정책을 수행해나갔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강역고(疆域考)』
「고구려(高句麗)의 족원(族源)과 예맥(濊貊)」(송호정, 『고구려발해연구』27, 2007)
「예맥,부여와 고구려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박경철·송호정, 『고구려연구』18, 2004)
「예맥(濊貊)의 형성과정과 고조선」(박준형, 『학림』22, 2001)
『고구려민족형성(高句麗民族形成)과 사회(社會)』(이옥, 교보문고, 1984)
「예맥족(濊貊族)에 관한 연구」(김정배, 『백산학보』5, 1968)
「예맥고(濊貊考)」(윤무병, 『백산학보』1, 1966)
「東北アジアの古代文化と穢人の民族的性格」(三上次男, 『古代東北アジアの史硏究』, 吉川弘文館, 1966)
「韓國古代民族考略」(芮逸夫, 『中韓論集』1, 1955)
「濊貊族小考」(三品彰英, 『朝鮮學報』4, 1953)
『松花江下流的赫哲族』(凌純聲,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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