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민족의 기원

우리민족(예맥족, 한족)의 형성과 발전과정

자연정화 2018. 7. 15. 14:01

우리민족(예맥족, 한족)의 형성과 발전과정

 

최종 빙하기 bc 19,000 ~ bc 9,000년 의 해수면은 지금 보다 120m 낮았으며, 한반도 서남쪽은 대규모 평야에 거대한 아리수(한강)가 흐르고 있었다.

 

 

신석기시대의 특징은 집단 농경생활과 돌을 다루는 기술이다. 바닷물이 엄청난 속도로 한반도 서쪽을 흐르는 대한 운하를 거슬러 올라오기 전까지 그들은 아리수(한강) 서쪽의 넓은 초원에서 사냥을 했을 것이며, 아리수(한강) 동쪽의 평야에선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얕은 바다에선 고기를 잡기도 했을 것이다.

 

황해의 경우, 평균수심이 40미터 정도, 가장 깊은 곳이 80미터이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많은 석기시대의 유적을 발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bc 13,000년 ~ bc 11,000년 기후변화에 따라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이 일어났고, 바닷물이 한반도 서쪽을 흐르는 아리수(한강)를 거슬러 올라오면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으며, 하천유역에 거주하던 신석기인들이 상류지역과 고원지역으로 대피했다.

 

 

그리고 bc 8,000년 ~ bc 5,000년의 3천년간을 비교적 안정된 해안선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평야보다 몇 배 넓은 면적의 평야가 남아 있는 황해 평야와 새로 생겨난 태고의 황해가 있었고, 하천 상류지역 및 고원지대에서 시대에 따라 발달되었을 물·불·돌을 다루는 기술로 크고 작은 나라들이 번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석기/청동기 요령지역 문화와 주요 유적

 

형성시기

한 글

한 자

위 치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7000년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신낙 문화 유적(모계씨족의 정주 취락)

新樂文化(신러)

랴오닝성 선양시 북부 지역

기원전 7000년 ~  기원전 6500년

신석기시대 소하서 문화 유적

小河西文化

내몽골 츠펑시 아오한기 지역

기원전 6200년 ~  기원전 5200년

신석기시대 흥륭와 문화 유적

興隆洼文化(싱룽와)

내몽골 츠펑시 아오한기 지역

기원전 6000년 ~  기원전 5200년

신석기시대 사해 문화 유적

査海文化

내몽골 접경 사해 유역

기원전 5200년 ~  기원전 5000년

신석기시대 부하 문화 유적

富河文化

내몽골 츠펑시 아오한기 부하 유역

기원전 5000년 ~  기원전 4400년

신석기시대 자오바오거우 문화 유적

趙宝溝文化(자오바오거우)

내몽골 난하 계곡과 허베이성 북부

기원전 4500년 ~  기원전 3000년

신석기시대 훙산 문화 유적

紅山文化(훙산)

내몽골 요동 하북지방

기원전 3000년 ~  기원전 2000년

동석병용시대(銅石倂用時代) 소하연 문화 유적

小河沿文化

내몽골 츠펑시 아오한기 소하연 유역

기원전 2000년 ~  기원전 1500년

초기 청동기시대 하가점 하층 문화 유적

夏家店下層文化

내몽골 츠펑시 아오한기 맹극하(孟克河) 유역

 

 

정착생활에 의한 최초의 문명이 한반도 남서부에서 시작 --> 기후변화로 각 부족들이 흑룡강 유역, 황해평야 등지로 흩어짐 --> 황해 평원, 일본에 진출한 부족들 바닷물 침입으로 쇠퇴, 흑룡강 유역에서 토기를 중심으로 문명 발달 --> 기후변동으로 대부분이 평야가 넓고 따뜻한 중국 남부로 진출, 중국 벼농사 시작, 일부는 황하 북부해안 진출 --> 북방계 일부 황하 이남으로 진출 --> 반발세력이 황하 중류에서 일어섬 --> 발해만 북쪽의 홍산·소하연 문화 발생 --> 기후변동으로 문명 일시 소멸 --> 단군조선 및 하/상나라 건국

 

 

한편 고원지역인 바이칼호까지 피신했던 종족들은 급격한 기후변화[영거 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에 따라 bc 8,000여년전부터 남하하기 시작을 했고, 처음에는 같은 민족이였으나 이동하며 여러 곳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스칸디나비아반도, 중동, 동쪽 등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바이칼호에서 동으로 이동을 한 민족은 예맥족, 한족 뿐 아닌, 몽고족, 만주족, 거란족, 흉노족, 허저족, 저, 강, 선비등 17개 민족에 달하였다. 그 이동에 주류를 이룬 것이 예맥족과 한족이다.

 

바이칼호에서 파란 물이고 어머니의 물이라 하는 흑룡강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예맥족의 경우, 흑룡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흑룡강과 흙탕물인 송화강이 만나는 지금의 동강시에서 다시 송화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옛말에 강 하류로간 민족은 망하고, 강 상류로 간 민족은 흥한다는 말이 있듯이, 송화강 상류로 올라가 예맥족의 터를 잡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얼빈, 자무스, 길림지역에 거주하게 된다.

 

예맥족이 세운 나라는 부여로, 지금의 송원, 농안, 길림, 삼차진 근처에 그 자리를 잡고있으며, 후에 부여의 고주몽이 요령성에서 고구려를, 고구려의 온조가 하남에서 백제국을 세우기에 이른다.

 

 

한족의 경우, 예맥족과 함께, 흑룡강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며, 두 개의 부류로 나뉘게 된다. 그 하나는 목단강을 따라 내려가 경박호에서 단군조선이 된 한족이며, 다른 하나는, 우수리강을 따라 남하하여 싱칼호를 지나, 남하하여, 삼한을 이루게 된다. 후에 가야, 신라, 백제의 근본이 되며, 백제의 경우, 토착민인 한족과, 지배계층인 예맥족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내부 분쟁이 끊이지 않기도 하였다.

 

우선 우리민족이 세운 나라 중, 고조선에 대해 알아보자. 고조선의 건국신화는 한국의 모든 사람이 알 정도 유명하다. 하느님의 아들 한웅이 한인을 졸라, 땅으로 내려가고 싶어하여, 천부인3개와 무리 3천명을 대리고 신시(경박호근처로 추정)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고,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자하여, 마늘과 쑥으로 백일 햇빝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있다하여, 곰은 참아 여자가 되어, 한웅과 웅녀와의 아기가 1대 단군이 한백겸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부여는 예맥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 '동사강목'의 경우 BC 1286년으로 기록이 되어있으나, '동이전'에 의하면 BC 451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장소는 길림으로 추정되고 있고, 우두머리 안은 단군의 후손으로 보고도 있다. 부여는 호족과 일반인, 노예로 이루어 졌으며, 대가의 부족장 중에서 왕이 선출되었고, 제가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했다. 대가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이 있어 사출도를 지켰다. 부여는 동부여와 북부여가 있는데, 해부루 왕이 꿈에서 만난 해모수가 가섭원으로 가라하여, 지금의 아성, 송원 또는 삼차진으로 간 부여가 동부여이고, 북쪽으로 간 부여를 북부여라고 한다.

 

부여의 왕 중 해부루 왕은, 경박호에서 금개구리모양을 한 아이를 데리고와 자식처럼 키웠는데, 이를 금와왕이라 한다. 이 금와왕의 부인 중 유화라는 부인이 빛이 따라다니며 임신을 하였는데 알을 낳게 되었고, 그 알에서 나온 사람이 주몽으로, 뛰어난 능력을 어려서부터 보였다. 이를 시기한 전비의 아들인 대소가 주몽을 죽이려 하자, 부하 8명과 도망을 하여, 송양국에서 소서노라는 부인을 두고 요령성의 오녀산성, 지금의 졸본성에 구려국을 세우게 된다. 이를 우리는 고구려라 한다.

 

이때가 BC 37년이다. 고구려는 후에 흥성하여, 고구려의 뿌리국이라 할 수 있는 부여국까지, 멸하게 한다. 고주몽의 아들의 부여국에서의 유리와, 소서노의 아들 비류, 온조가 있었는데, 유리가 부여국에서 칼증표를 들고 주몽을 찾아오니, 제2대 고구려의 왕이 되었고, 황조가로 우리에게 유명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멸망은 내분에 의해 파멸하며, 그 시기는 668년이다.

 

그리고 유리의 등장으로 위협을 느낀 소서노와 두아들이 남하하여, 하남으로 와 10명으로 십제라는 나라를 온조가 세우고, 비류는 미추홀 지금의 인천에서 90명을 대리고 갔다. 기반을 잡은 한민족과의 갈등과, 바다근처이기에 짠 흙으로 농사가 어렵자, 다시 온조에게 가게된다. 이리하여 모두 100명의 사람이 나라를 세우게 되어, 이를 백제라하고, 이때는 BC 18년으로, 지금의 하남인 위례성에 자리를 잡았다. 그 문화가 특히 찬란하게 피었던 백제는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의자왕대에 멸을 하게 된다.

 

신라의 경우 고조선이 멸망하여 그 일부가 경상도 지역으로 들어와 토착민들과 함께, 연맹체로 시작하여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설화에 의하면 역시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에 의해, 나라가 시작되며, 신라는 BC 57년에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후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통일하게 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민족은 예맥족과 한족의 결합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이들의 나라에는 부여,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 고구려에서 나온 백제와, 신라라는 국가를 형성하여 발전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