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3)韓族,가야,신라

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1)아라가야의 현주소

자연정화 2018. 7. 23. 09:50

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1)아라가야의 현주소

금관가야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성했던 후기 가야의 맹주

 

출처 : 경남도민일보 2006. 11. 15. 조재영/조현열 기자

 

현재 함안군을 중심으로 마산시와 진주시, 의령군 등 각 일부지역이 영향권이었던 ‘아라가야’는 후기가야의 맹주로 군림하며 가야 멸망 최후까지 신라의 정복전쟁에 맞설 만큼 강성했으며 그에 걸맞는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지만 지금 우리 국민들은 ‘가야’하면 ‘김해’, ‘금관가야’만을 떠올릴 만큼 ‘아라가야’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다.

 

<경남도민일보>는 일본에 있는 1500년 전 아라가야의 흔적과 지금 그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통해 아라가야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 제시하고자 ‘일본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를 7회에 걸쳐 기획취재 보도한다.

 

▲ 함안군 가야읍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구릉 정상능선을 따라 대형고분이 줄지어 늘어서 1500년전의 아라가야의 실체를 말해주고 있다.

 

복원사업 예산 턱없이 부족…발굴조사 등 ‘더딘 걸음’

 

△아라가야의 실체 = 1992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말이산 고분군과 연결된 능선의 아파트공사 현장에서 그 동안 국내에서는 나온 적이 없는 희귀한 유물이 발견됐다. 가로 세로 10cm 안팎의 철판을 이어붙여 길쭉한 물건 덮개처럼 만든 철기 유물이었다.

 

현장을 조사하던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구려 벽화고분에 그려져 있는 ‘기마무사도’에서 무사가 탄 말을 감싸고 있는 말갑옷(마갑)이었다.

 

당시 함안 아라가야 고분에서 마갑이 출토된 사실은 하나의 사건이었으며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1500년 전에 만들어진 온전한 형태의 마갑이 처음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데다 아라가야 고분군에서 마갑이 출토됐다는 것 자체로 아라가야의 철기문명이 그 만큼 수준높았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마갑은 그 동안 경주 신라 고분과 합천 옥전고분에서 발굴된 적이 있지만 이들 마갑은 펼쳐진 상태가 아니라 철판이 겹겹이 한덩이로 뭉쳐진 상태로 출토됐기 때문에 원형을 알아볼 수 없다.

 

그래서 함안 아라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마갑은 그 가치를 따지기가 어렵다. 온전한 형태의 마갑은 아라가야 마갑이 유일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마갑이 발굴된 고분에 ‘함안 마갑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로 함안 마갑과 함안 마갑총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국내외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마갑총은 말이산고분군의 끝자락에 있다. 2km 가량 나즈막한 높이의 말이산 정상 능선을 따라 30여 기의 대형고분이 줄을 이어 있는 말이산고분군은 함안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눈에 보이는 고분은 30여 기이지만 주능선과 가지능선을 따라 자리를 잡고 있는 실제 고분의 숫자는 확인된 것만 150기가 넘는다.

 

현재까지 이들 고분은 일부만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조사에서는 인골, 칼, 장신구, 철기, 토기 등 갖가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불꽃무늬굽 다리접시(화염형 투창고배)’가 대량으로 나왔다.

 

접시다리에 불꽃을 단순화한 모양의 구멍을 뚫어 멋을 낸 불꽃무늬 굽다리접시는 아라가야에서 제작됐던 대표적인 토기다. 그래서 고고학계에서는 ‘불꽃무늬 굽다리접시’를 ‘함안식토기’의 대표로 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운 강력한 집단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꽃무늬토기는 나중에 일본에서도 여러군데서 발굴돼 1500년 전 일본열도에까지 뻗친 ‘아라가야의 힘’을 웅변해준다.

 

▲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토기인 불꽃무늬 굽다리접시(화염형투창고배). 이 불꽃무늬 토기는 일본에서도 발굴돼 1500년 전 일본열도에까지 뻗친 아라가야의 힘을 보여준다.

 

그러나 15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속에서 금관가야와 아라가야에 대한 대접은 다르다.

 

김해 금관가야는 지난 1999년부터 1297억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돼 복원사업(가야문화환경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복원사업은 김해시가지 구지봉에서 봉황동에 이르는 2km 구간의 가야유적을 정비 복원하는 국가정책사업으로 유적발굴, 가야문화연구, 설계감리에 73억원, 약 4만평 부지매입비 547억원, 대성동고분박물관 등 시설조성 513억원, 유적연결도로 등 5개 기반시설정비에 164억원이 들어갔다.

 

김해시는 지금까지 계획된 대부분의 사업을 마무리하고 약 90억원의 사업비가 드는 김해읍성 북문복원사업만 남겨두고 있다. 시는 이 사업도 올해말 발주해 내년에 완공하는 등 당초 계획된 가야문화환경정비사업 전체를 일단락하고 새로운 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복원사업 덕분에 시가지에 자리잡은 금관가야 유적이 새단장됐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금관가야을 접할 수 있도록 각 유적이 공원화됐다. 또 시민과 관광객이 한눈에 금관가야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박물관과 전시관이 설치됐다.

 

뿐만 아니다. 금관가야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는 기마인물상토기 등 유물을 소재로 한 대형 작품을 거리 곳곳에 설치해 누구라도 이 도시가 가야의 역사도시임을 눈치 챌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전국 규모의 축제도 새로 시작했다. 올해로 2회째 개최된 ‘가야세계문화축전’이 바로 그것이다. 복원사업으로 잘 정비된 유적단지 일원에서 벌어지는 축전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수준높은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물론 축제의 중심은 ‘금관가야’다.

 

함안의 ‘아라가야’는 어떨까?

 

함안군은 그 동안 각각 국가사적 84호·85호로 지정돼 있는 도항·말산리 고분군을 정비 복원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부지를 사들여왔다.

 

 

그러나 전체 14만7000여 평의 문화재보호구역중 이제 겨우 7만6000여 평을 매입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매년 평균 10억원이 채 안된다.

 

‘가야문화권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확보되는 예산이 국·도비와 군비를 합쳐 10억원을 조금 넘는다. 이중 80% 가량이 토지매입비로 쓰이고 나머지 20%가 발굴조사 및 탐방로 개설 등에 쓰였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토지매입과 발굴조사, 고분군 탐방로 개설 등에 쓰인 예산이 전체 50억원 정도다.

 

△아라가야의 현주소 = 김해시가 1998년 무렵 금관가야 복원사업비로 1300억원을 확보하는데에는 김해시의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지만 당시 집권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를 비롯해 김종필씨, 김혁규 경남도지사, 김영일 국회의원 등 김해 김씨 종친들의 막강한 영향력이 작용했기 때문에 대규모 예산확보가 가능했다는 것은 김해에서도 인정할 만큼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로부터 8∼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김해시가 금관가야를 시민과 관광객에게 알리기 위해 시가지 곳곳에 금관가야의 유물을 본떠 대형 조각상과 분수를 설치했다면 함안군은 아라가야를 알리기 위해 시가지 도로옆 옹벽 몇 군데에 아라가야의 유물을 벽화로 그렸다.

 

1300억원과 50억원의 차이다. 단순한 비교이긴 하지만 백 마디 말 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수치가 아닐까.

 

 

일본서 완벽한 함안식 토기 발굴돼

가시하라 박물관 전시 본보 기획취재팀 확인...'아라가야 전파'확실한 증거

 

출처 : 경남도민일보 2006. 10. 27. 조재영/조현열 기자

 

후기가야의 맹주국으로 추정되고 있는 아라가야의 토기(함안식 토기)와 똑같은 토기가 최근 일본에서 발굴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아라가야 문화가 일본의 고대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 파편을 조합해놓은 고배의 다리에 불꽃모양의 구멍 일부가 선명하게 나있다. 뒤쪽 오른쪽 고배는 함안 도항리 10호분에서, 왼쪽은 마산 현동 59호분에서 출토된 아라가야 토기이며 다리부분에 불꽃모양의 구멍이 나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일본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라는 주제의 기획취재를 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취재팀은 26일 일본 나라현의 가시하라 고고학 연구소 부속 박물관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곳에는 아라가야 토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보이는 고배(굽다리 접시) 2점이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바다를 넘나든 교류-가시하라의 고분과 도래인'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되고 있다.

 

이들 고배는 가시하라 시청 소속 발굴단이 지난해 이 지역 고대 생활유적인 '신도우유적'에서 발굴한 각종 유물 가운데 섞여 있었으며 발굴 당시에는 파손된 상태였다.

 

전시중인 고배는 파편을 조합해놓은 것이지만 다리부분에 아라가야 토기를 대표하는 불꽃형태의 구멍이 선명하게 뚫려 있으며 현재 함안을 중심으로 출토되고 있는 불꽃무늬토기와 전체적인 모양, 색깔, 재질 등이 똑같다.

 

발굴단과 박물관측은 이들 고배가 5∼6세기에 제작된 아라가야식 토기로 보고 있다.

 

박물관은 전시되고 있는 고배 뒤에 함안 도항리 10호분과 마산 현동 59호분에서 출토된 아라가야 토기 사진판을 설치해 관람객이 쉽게 비교해볼 수 있도록 해놓고 있다.

 

이 고배는 아직까지 일본 관련학계에 정식으로 보고되지 않았으며 오는 29일 가시하라고고학연구소 부속 박물관 연구강좌에서 이 내용을 일반인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아라가야토기 국내외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이주헌 학예연구관은 "가시하라 신도우 유적에서 발굴된 아라가야 토기는 함안에서 발굴된 토기와 똑같다"며 "이는 아라가야에서 제작된 토기가 당시 일본 야마토정권의 중심지였던 이곳 나라지역까지 전해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편 취재진은 일본 나라현 천리시 천리참고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아라가야식 토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천리대학 다케다니 토시오 교수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듣고 곧바로 가시하라 박물관을 방문, 사실을 확인했다. <경남도민일보>는 기획 '일본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를 시리즈로 보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