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2)한일 사회 속의 아라가야
‘국사’에도 실리지 못한 아라가야,,,중·고교 국사교과서에 흔적 찾아 볼 수 없어
출처 : 경남도민일보 2006. 11. 15. 조재영/조현열 기자
△동경박물관에서 찾은 아라가야 = 세계적인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일본 국립동경박물관. 이 박물관 별관 동양관에는 한국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 건물 2층에는 한국의 고대국가 유물이 관람객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 일본 국립동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아라가야 굽다리접시(TJ4685)(박물관 자료실에 요청해 받은 전시유물 사진 복사본)와 일본교과서에 독자적인 아라가야 세력을 기록해 놓고 있는 지도.
취재팀은 이곳에서 ‘아라(阿羅), 한국 경상남도 출토. 삼국시대(加耶) 4∼5세기’라고 간단한 알림정보가 적힌 굽다리접시 하나가 전시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TJ-4685’라는 기호가 붙은 이 토기는 불꽃무늬 창이 나 있는 전형적인 함안식 토기는 아니지만 아라가야 토기가 분명한 굽다리접시였다. 이곳에는 ‘TJ-4685’말고도 아라가야 토기로 추정되는 토기 1점이 더 전시돼 있었다.
이들을 확인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이주헌 학예연구원은 “여러차례 일본을 다녀갔지만 비로소 동경박물관에 아라가야토기가 전시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감격했다.
그는 “동경박물관에 아라가야 토기가 전시돼 있는 그 자체만으로 아라가야의 가치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에는 김해 금관가야와 고성의 소가야 등 도내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가야유물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취재팀은 ‘TJ-4685’가 언제 어디서 발굴됐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 동경박물관에 수집됐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이튿날 정기휴관한 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운이 좋으면 이 토기와 함께 발굴된 다른 유물이 동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더 운이 좋아 일제시대 ‘발굴조사보고서’라도 찾아내면 ‘아라가야’의 실체를 밝히는데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물관 자료실에서 ‘TJ-4685’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지만 추가 정보는 없었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졌다면 ‘TJ-4685’와 관련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동경박물관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취재팀은 동경박물관에서도 ‘아라가야’의 실체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일본 교과서속의 아라가야 = 교과서를 보면 특정 사안이 그 사회에서 얼마만큼의 무게로 인식되는지 엿볼 수 있다. 일본의 학교에서는 ‘가야’와 ‘아라가야’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오사카 시내 전문서점에서 구입한 일본 중·고교 교과서에서 어느 정도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출판사 ‘산세이도’에서 펴낸 문부과학성검정교과서 <고교일본사B>2006년판 ‘제3장 고대국가의 확립’이라는 단원 본문에 ‘가야’가 등장한다. 또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린 ‘6세기의 조선’이라는 지도에는 ‘안라(아라가야)’가 ‘남가라(금관가야)’, ‘대가라(대가야)’와 함께 위치가 표시돼 있다.
또 ‘야마가와출판사’에서 펴낸 고교 <상설 일본사B(문부과학성검정교과서)> 에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2장 율령국가의 형성’이라는 단원에 ‘6세기의 조선반도’라는 제목의 지도가 실려 있고, 그 속에 역시 안라와 대가라, 남가라가 드러나 있다.
함안박물관 백승옥 박사는 이 같은 일본 교과서 내용에 대해 “일본 교과서에서 아라가야를 이렇게 표시하고 있는 것은 당시 아라가야가 명백하게 독자적인 국가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설 일본사B>에서는 이 것 말고도 ‘대륙문화의 수용’이라는 작은 단원에서 ‘조선반도, 중국과 교역을 하는 가운데 철기 토기 생산, 직물, 금속공예, 토목 등의 여러 기술이 주로 조선반도로부터 온 도래인들에 의해 전파됐다. 야마토정권(3세기 말∼7세기 초)은 그들을 각각 기술자 집단으로 조직하고 각지에 살게 했다. 한자를 사용해서 야마토정권의 여러 가지 기록 및 출납 외교문서도 작성됐는데 이것들도 도래인에 의해 이뤄졌다’고 당시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사랑과 환경을 생각하는 오사카서적’에서 펴낸 중학교 사회 <역사적분야(문부과학성검정)> 교과서에는 ‘한반도 도래인이 일본의 각지에 살면서 토목 건축 마구 및 금속가공 고급견직물, 고온에서 굽는 질높은 토기(스에키토기)를 만드는 기술, 한자, 유교 불교 등을 전해줘 일본의 기술 및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소개해 놓았다.
△우리 교과서에는 없는 아라가야 = 어찌보면 아라가야의 본 모습을 찾는 작업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미 조사 연구된 성과만으로도 아라가야의 값어치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아라가야’는 지역 주민들과 관련학계 학자들만 아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아라가야’가 뚜렷하게 표시돼 있음을 확인하고, 과연 우리나라 국사교과서에는 ‘아라가야’가 어떤 모습으로 실려있을까 궁금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아라가야’는 물론 ‘가야’에 대한 설명 자체를 찾기가 어렵다.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가 차례로 간략하게 다뤄질 뿐이다.
고등학교 <국사>는 어떨까? 저작권자가 교육인적자원부이고 편찬자가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로 돼 있는 고등학교 <국사>에는 그나마 가야에 대한 부분이 언급돼 있다.
‘고대국가의 성립’이라는 단원에서 ‘가야’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이 되어 연맹왕국으로 발전했으며, 금관가야는 김수로에 의해 건국됐다. 가야의 소국들은 농경문화가 발달했으며 풍부한 철의 생산과 해상교통을 이용해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이 발달했다. 4세기 말∼5세기 초 신라를 후원하는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몰락해 가야의 중심세력이 해체되고 가야지역은 낙동강 서쪽 연안으로 축소됐다’고 설명되어 있다.
또 ‘삼국의 발전과 통치체제’라는 단원에서는 ‘전기 가야연맹이 해체되면서 김해 창원을 중심으로 하는 남동부 지역의 세력이 약화됐다. 5세기 후반에 고령지방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가야연맹이 형성됐다. 신라와 백제의 다툼속에 후기가야연맹은 분열해 김해 금관가야가 신라에 정복당하고 가야 남부지역은 신라와 백제에 의해 분할점령됐으며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하면서 가야연맹은 완전히 해체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400여 쪽에 이르는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아무리 뒤져봐도 ‘아라가야’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으며, 함께 실린 지도 등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 국사수업에서 ‘아라가야’는 없는 것이다. 일본 교과서에서는 남의 역사이지만 ‘아라가야’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역사인데도 ‘아라가야’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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