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4)일본의 아라가야 철기
일본국보 말가면 아라가야 교역품...
와카야마현 오타니고분서 말갑옷과 함께 발견 국가문화재 지정
출처 : 경남도민일보 2006. 11. 15. 조재영/조현열 기자
△오타니고분의 말 갑옷과 말 가면 = 1957년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오타니고분에서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말 가면이 출토됐다. 또 이 고분에서는 말 재갈, 발걸이, 장식품과 가로세로 크기가 10㎝ 안팎의 얇고 네모난 철판이 여러겹으로 뭉쳐 있는 말 갑옷 등 철제품이 함께 발굴됐다. 학자들은 이들 유물이 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말 가면이 출토된 오타니고분은 1978년 일본 국가사적으로 지정돼 현재 고분과 주변 지역이 단정하게 정비된 상태다. 또 ‘말 가면’은 국가중요문화재(우리나라의 국보나 보물과 같다)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 말갑옷, 말가면 등을 착용한 말을 탄 가야무사의 모습.
인근 유적지서 가야계 토기 발굴…철제품 한반도서 전파 추정
당시 일본 학자들은 거의 완벽한 형태의 말 가면이 출토된데 대해 놀라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겹으로 겹친 채 뭉쳐 있는 상태의 말 갑옷의 원형을 알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이 말 갑옷은 뭉쳐있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까지 모두 400여 개의 작은 철판이 모여 하나의 온전한 형태를 이루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학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있었다. 말 가면과 말 갑옷 같은 당시 최고 수준의 철제품이 왜 오타니고분에서 출토되었느냐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말에게까지 쇠로 만든 갑옷을 입혀 중무장할 정도의 철기문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일본 학자들의 의문은 다른 곳에서 풀렸다.
오타니고분에서 멀지 않은 구스미고분에서 도질토기가 많이 출토됐는데 이 속에 항아리를 비롯해 그릇받침, 접시, 굽다리접시 등 가야계 토기가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오타니고분에서 발견된 말 가면과 말 갑옷을 포함한 철제품들이 한반도의 가야에서 전파된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말 가면과 말 갑옷 등의 철제품은 모두 전쟁과 관련된 물건이다. 일본 학자들은 오타니고분에서 출토된 말 갑옷이 고구려 벽화고분의 ‘기마무사도’에서 무사가 탄 말을 감싸고 있는 말 갑옷과 유사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오타니고분에서 발견된 말 갑옷의 철편을 보전처리해도 심하게 뭉쳐져 있기 때문에 말 갑옷의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말 갑옷의 구조와 형태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은 1992년 함안군 가야읍 마갑총에서 ‘말 갑옷(마갑)’이 발굴되면서부터였다.
▲ 와카야마시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말가면. 박물관은 실제 말가면은 공개하지 않고 전시실에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취재팀을 위해 특별히 실제 유물을 공개하고 사진촬영도 허락했다. 왼쪽부터 함안박물관 백승옥 박사, 국립중앙박물관 이주헌 학예연구관, 조현열 기자, 구성우 현지 코디네이터.
△세계적 유물 아라가야 말갑옷 = 1992년 6월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고분군(사적84호) 북쪽 능선 끝자락과 연결돼 있는 도항리 103-4번지 아파트 건설 공사현장에서 놀라운 유물이 발굴됐다.
전형적인 아라가야 토기는 물론 활짝 펼쳐진 상태의 철제 말 갑옷과 말 가면 등 1500년 전 아라가야의 유물이 출토된 것이다. 아쉽게도 말 갑옷의 한쪽과 말 가면이 중장비에 의해 심하게 훼손됐다.
그러나 훼손되지 않은 한쪽 말 갑옷은 전체 형태를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말의 몸통에 갑옷을 고정시키기 위해 끈을 걸어 묶었던 작은 고리까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보전상태가 좋았다. 1500년전 아라가야 철기문화의 수준을 대변해 주는 ‘작품’이었다.
국내에서는 신라고분인 경주 황남동 109호고분과 합천의 옥전고분에서도 철제 말 갑옷이 이미 출토됐지만 일본 오타니고분의 말 갑옷과 같이 철편이 뭉쳐진 상태로 발굴돼 말 갑옷의 원형을 알 수 없었다.
국내 고고학계는 함안 아라가야고분에서 출토된 말 갑옷을 통해 고구려 고분벽화 ‘기마무사도’에 나오는 ‘마갑’의 실제 형태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오타니고분 출토유물을 연구하던 일본 학자들도 이 마갑 출토소식을 접하고 자신들 앞에 놓인 철제 유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와카야마 지역에서 그처럼 수준 높은 철제유물이 발굴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구스미고분에서 출토된 가야계 토기가 오타니고분의 철기유물이 가야에서 건너온 것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함안에서 발굴된 마갑이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라가야 말 갑옷’은 고대 아시아의 말 갑옷 형태를 원형대로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유일한 유물이며 국제적 가치를 가진 유물인 셈이다.
‘아라가야 말 갑옷’은 발굴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국가문화재 지정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전국 지역신문 종합평가 결과 <경남도민일보>가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됨에 따라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오노 사치오 와카야마시립박물관 전문주간 “아라가야, 교역통해 문화전해”
함안 고도의 철제품 - 와가야마 소금 물물교환
와카야마시립박물관의 실무총책임자인 오노 사치오(57·사진) 전문주간은 오타니고분의 말가면과 말갑옷을 비롯해 와카야마현의 고대유적에서 발굴된 철기와 한반도계 토기는 한반도의 남부 혹은 동남해안지역에서 전파돼온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오타니고분 뿐만 아니라 인근의 구스미고분, 나루다키 유적, 사카노고시고분 등에서 한반도계의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된 것과 이들 유물이 주로 가야계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와카야마현에서 출토된 한반도계 유물이 당시 왜와 한반도 남부지역의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자신은 생각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와카야마현 니시노쇼유적 등에서 제염토기가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5세기때 이 지역에서 소금을 많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이 시기 소금을 생산하던 제염유적이 전혀 발굴되지 않고 있다”며 “따라서 와카야마현에서 발굴되는 말갑옷, 말가면, 금제장식, 가야계 토기 등은 당시 소금과 교환돼 들어온 것이며 와카야마에서는 소금을 팔고 아라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선진문물을 전해주는 무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구스미고분, 나루다키고분 등에서 출토된 토기중에는 신라계와 백제계는 전혀 없으며 가야계만 있다”며 “아마도 가야에서도 일본과 교역하기 좋은 조건을 갖춘 해안지역(진동, 마산, 진해, 김해, 고성 등)과 교역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와카야마현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중에는 소가야(고성지역)계 유물이 없기 때문에 오노 사치오씨가 추정하는 해안지역은 함안지역과 가까운 해안지역(진동, 마산)이거나 김해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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