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3)韓族,가야,신라

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5)아라신사와 아라마을

자연정화 2018. 7. 23. 10:10

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5)아라신사와 아라마을

나라현 마을에서 아라가야를 엿보다...'안라는 대한민국 함안으로 추정'

 

출처 : 경남도민일보 2006. 11. 15. 조재영/조현열 기자

 

△아라신사와 아라마을 = "안라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안으로 추정되고…."

 

일본 나라현 구사츠시 아나무라 마을에는 이 마을 주민들이 모시는 '안라신사(安羅神社)'가 있다. 이 신사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귀 첫머리 부분이다. 신사의 이름과 유래, 마을이름만으로도 이 곳이 '함안 아라가야'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쿠사츠시 시가지 대로변에 있는 또 하나의 안라신사. 확인된 것 말고도 많은 '안라신사', 또는 아라가야와 관련이 있는 신사나 마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사입구에 설치돼 있는 '안라신사 유서기'에는 이곳이 일본의술의 조상신, 지방개발의 조상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소개하면서 이들 조상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설명을 요약하면 '조상신은 아메노히보코노미코도(天日槍命)이며, 그는 신라의 왕자로서 기원전 27년 3월 한 무리를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와 떠돌다가 이곳 아나무라에 정착했다. 얼마 후 그는 함께 온 이들을 이곳에 남겨두고 병고현으로 옮겨가 살았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다.

 

그가 데리고 온 사람 중에는 의술, 제철기술, 농경 등에 뛰어난 이들이 많아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고 주변 평야를 개척하는 등 주민들로부터 존경받았다. 신사의 이름은 한국 안라의 지명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이곳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고국과 관련된 이름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한다'정도다.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성립시기,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 등을 따져 보면 '기원전 27년'이라는 기록과 '아메노히보코노미코도'가 실제로 신라의 왕자였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1500∼2000년 전 까마득한 신화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신라의 왕자'가 아니라 '아라가야의 왕자'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히려 신사와 마을의 이름에서 유추한다면 '아라가야의 왕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신라왕자가 아라가야인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보다는 '아라가야 왕자가 한 무리의 아라가야 주민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신사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전체적으로 어떤 연유에서 '안라신사'가 건립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안라신사'는 아나무라 마을에 있는 것 말고도 인근에 2개가 더 있다. 아나무라 마을 인근 2㎞쯤 떨어진 곳에 '소안라신사'가 있다. '아메노히보코노미코도'와 그 일행의 자손들이 살던 아나무라 마을이 커지면서 그들의 후손들이 인근에 따로 마을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조상신을 모시고자 작은 안라신사를 세운 셈이다. 그리고 구사츠시 시가지 인근 대로변에도 '안라신사'가 하나 더 있다.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지만 아나무라마을에 있는 '안라신사'와 같은 연유로 건립되었을 것이다.

 

△아라가야의 후예들 = 안라신사가 있는 아나무라 마을은 12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다.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 신사에 10여 명의 주민이 나와 있었다. 또 이 마을주민은 아니지만 이 지역구 시의원과 중의원이 각각 참석해 인사를 했다.

 

주민들은 캠코더로 취재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화면에 담을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주민 대표는 취재팀을 마을 주민들에게 일일이 소개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아메노히보코노미코도'무리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외지인에게 쿠사츠시를 안내하는 자원봉사자 이부키 세이로(73)씨는 아라신사와 아라마을에 대해 "신라왕자가 살던 지역이며, 그가 이곳에서 선진기술을 전파했다. 돌을 불에 데워 병을 치료하는 의술을 폈으며, 지금까지도 그 돌과 의술이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돌을 이용한 치료법은 아마도 지금 행해지는 '뜸치료술'의 원시적인 형태일 것이다.

 

실제로 '안라신사'에는 그들의 '조상'이 주민들의 치료에 사용했던 검은돌 27개가 모셔져 있다. '신사'는 말그대로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내부를 공개하지도 않고, 사진촬영은 더욱 엄격히 금지된다. 그런데도 마을주민들은 취재진을 위해 신사내부를 모두 공개하고 사진촬영도 허락했다.

 

그러나 '검은돌 27개'는 '신물'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준비한 똑같은 모양의 돌을 보여주며 취재팀의 이해를 도우려 애쓰는 등 깊은 성의를 보였다.

 

아라신사와 아라마을>"조상들의 땅인 함안 가보고파"

안라신사보존회 요시다 미츠오 회장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역사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고 '안라신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신사보존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요시다 미츠오(67) 회장.

 

▲ 요시다 미츠오 회장이 아나무라마을 안라신사에서 취재팀에게 신사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취재팀을 세 군데 안라신사로 안내하고자 이동하는 차속에서 한국, 특히 함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김연자씨가 공연을 하면 반드시 공연장에 가서 응원을 한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김연자씨 남편이 경주 사람이며, 경주는 우리 조상이 활동했던 지역과 가깝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와 가까운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메노히보코노미코도'가 기록이나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는 모두 동질감에서 우러난 것일 터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아나무라 마을 사람들은 고대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파한 도래인의 후예라는 사실에 자부하고 있으며,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고 했다.

 

그는 "일부 일본인은 그렇게 설명하면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더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또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바쁜 일정 때문에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까지 신경써 사비로 인절미 도시락을 준비해 준 요시다 미츠오 회장은 "아메노히보코노미코도가 일본에 와서 아라신사와 아라마을이 생겼듯 나도 함안에 꼭 가보고 싶다. 지금과 같은 우호관계가 유지되기를 기대한다"며 취재팀과 일일이 손을 잡은 뒤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