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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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7)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정화 2018. 7. 23. 10:16

일본 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7)어떻게 할 것인가

국사 교과서'금관가야' '대가야'만 존재하는 현실...이젠 '제대로된 역사적 평가'부터

 

출처 : 경남도민일보 2006. 11. 15. 조재영/조현열 기자

 

'일본속의 아라가야를 찾아서' 기획취재팀은 이번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아라가야'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복원된 스에무라 유적의 토기가마

 

'아라가야'가 일본에서는 남의 나라 고대사의 일부분일 뿐인데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을 만큼 가치를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국립동경박물관에 '아라가야 토기'가 전시돼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아냈다. 최근 나라현 가시하라시 신도우유적에서 고대 일본사회에 아라가야 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확신할 수 있게 해주는'아라가야 토기'가 출토된 것도 확인했다.

 

거 '아라가야'를 연구했던 일본 학자들이 남긴 기록과 조사내용 등을 추적하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아라가야'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보았다.

 

그에 비해 국내의 현실은 아직까지 '아라가야'의 값어치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가 신라 백제 고구려만을 인정하고 연구하는 우리 역사학계의 '학풍'때문이든, 가야중에서도 김해 김씨 뿌리인 김해 금관가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된 정치적 상황 때문이든, 우리 사회에서 '아라가야'와 그 주변 '가야'가 터무니없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 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역사와 현재 사회에서 '아라가야'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함안군과 경남도, 정부, 학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사'교과서 수록 = 일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고대국가형성을 설명하는 단원의 지도에 '아라가야'가 선명하게 실려있다. 취재팀은 이를 통해 아라가야가 일본에서 어느 정도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금관가야'와 '대가야'만 존재할 뿐 '아라가야'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남의 나라인 일본에서조차 인정하고 있는 아라가야의 실체를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앞으로 함안군과 학계, 교육당국은 이를 바로 잡아 고교생들이 아라가야는 물론 주변의 다른 가야제국의 존재와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아라가야 토기가 전시돼 있는 일본 국립동경박물관 동양관

 

△말갑옷 국가문화재 지정 = 1992년 함안 마갑총에서 발굴된 '아라가야 말갑옷'은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 통틀어 온전한 형태로 발굴된 유일한 것이다. 1500년 전 아라가야의 높은 철기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일본(왜)의 제철기술 발전과 철기문화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엿보게 해주는 문화재다.

 

현재 이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문화재청에 국가문화재지정 신청을 해 심의를 앞두고 있다. '아라가야' 가치를 인정하는 작업은 아라가야의 대표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말갑옷'의 국가문화재 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일본내 사료 조사 = 아라가야는 그 동안 발굴된 유물과 당시 한반도 정세를 놓고 유추해 보면 고대국가로 인정해도 충분할 만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문헌자료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일본에는 이를 보충해줄 만한 자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이들 자료를 추적 조사하는 작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다.

 

1917년 공식적으로 함안 말이산 34호(현4호)고분과 30호(현5호)고분, 5호(현25호) 고분을 발굴한 이마니시류 교토대 교수가 남긴 기록이 첫 번째 대상이다. 이 기록은 덴리대학도서관 '귀중본실'에 있다. 또 이마니시류에 앞서 1914년 함안 말이산고군중 1개 고분을 발굴조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경대학 도리이류조(1870년∼1953년) 교수의 기록도 찾아내야 한다.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한일고고학을 연구하고 있는 사오토메 마사히로(55) 교수는 "도리이류조 선생이 남긴 기록이나 유물은 동경대 박물관 수장고 또는 조선총독부(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평양박물관 등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것 말고도 국립동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아라가야토기가 어떤 경로를 통해 수집, 전시되고 있는지 등을 조사하면 또 다른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 1500년전의 아라가야의 실체를 상징하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장명도요지와 제철유적 발굴조사 = 일본 오사카부와 나라현, 미에현 등지에서 '아라가야 토기' 혹은 아라가야의 영향을 받은 토기가 계속해서 발굴돼 당시 아라가야와 일본의 상호관계를 추정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본 오사카에서는 대규모 집단도요지인 스에무라유적이 발굴돼 관심을 모았다. 이 유적에서는 1400여 기의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박물관과 공원을 조성, 국민 역사교육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함안에는 스에무라유적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명도요지가 있다. 규모 역시 그에 못지 않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가야읍 묘사리 장명마을에서 법수면 우거리에 이르는 낮은 구릉지대를 따라 광범위한 지역 전체가 가마터로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규모의 고대 도요지는 전국에서도 확인된 사례가 드물다.

 

장명도요지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또 하나 반드시 찾아내야 할 유적이 있다. 바로 제철유적이다. 아라가야의 수준 높은 제철기술을 뒷받침할 만한 제철유적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함안 군북과 여항, 합천 야로, 밀양 사촌, 양산 물금 등에서 제철유적이 확인되고 있으나 정확히 가야시대 제련시설이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어 함안에서 확실한 아라가야 제철유적을 발굴해 낸다면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다.

 

△아라마을과 구사츠시 교류 = 일본 시가현 구사츠시에 아라라는 뜻의 아나무라마을과 안라신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같은 조상신을 모시는 또 다른 안라신사가 2개나 더 있음이 확인됐다. 또 현지 주민들도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 신라와 아라가야에 대한 명확한 구분은 없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아라가야'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편적인 조사활동 보다는 함안군과 구사츠시의 공식적인 교류를 추진, 정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고 더불어 아라가야사를 밝히는 조사작업도 같이 해나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90주년 학술심포지엄 개최 = 아라가야 유적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공식 발굴조사한 것은 1917년 10월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으로 위촉된 이마니시류 교토대 교수가 말이산고분군중 3개 고분을 대상으로 한 것이 최초다. 비록 일본 학자에 의해 이뤄진 조사이긴 하지만 '아라가야'의 실체를 밝히려는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그 이전 1914년 도리이류조 동경대 교수가 조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공식적인 조사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7년이면 90주년이 된다. 이마니시류 교수의 조사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 학자들의 아라가야사 연구성과를 정리해보고 더 나아가 전체 가야사를 재조명해 보는 마당이 필요한 시점이다.

 

△복원정비사업 = 아라가야 복원정비사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 제모습을 갖춰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 사업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함안군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경남도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복원정비사업은 시기가 중요하다. 금관가야 복원사업(가야문화환경정비사업)을 진행중인 김해의 사례를 보면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김해시는 정부지원을 받아 약 13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업비의 상당 부분이 실제 사업보다는 부지 보상비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함안지역은 아직까지 땅값이 높지 않아 김해보다 훨씬 적은 사업비로도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김해의 가야문화환경정비사업 실무를 맡고 있는 김해시청 문화재과 송원영 연구원은 "조건만을 놓고 본다면 함안이 김해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며 "김해에는 시각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는 대형고분도 없고 사업비의 대부분을 보상비가 차지하지만 함안은 한눈에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대형고분도 있고 상대적으로 부지보상비가 적은 점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