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단군조선(BC2333)

연암 박지원이 말하는 한사군, 평양, 패수

자연정화 2021. 6. 10. 07:17

연암 박지원이 말하는 한사군, 평양, 패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 사절인 사행단 일행에 합류한 연암 박지원 선생이 장장 5개월에 걸쳐 청나라를 다녀온 일정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5월에 한양을 출발하여 10월 27일 다시 한양에 돌아오는 데 약 5개월이 걸렸다.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는 도강록(渡江錄)으로 시작하는데 연암은 우리나라 역사를 압록강 이남으로 제한시키는 조선의 사대부들을 향해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연암은 평양과 패수의 위치가 시대에 따라 바뀌었음을 사료를 바탕으로 고증하면서 요동 땅이 우리 조선의 땅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평양이 대동강 인근이라고 생각하는 당대의 조선 선비와 식자층을 크게 나무라고 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사대 사관과 소중화 의식에 경도되어 대륙의 땅을 스스로 포기하고 압록강 이남으로 축소되었음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도강록에서 보여주는 연암의 역사 인식은 230여 년이 지난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연암 박지원이 말하는 한사군, 평양, 패수

출처 : 문사 2020. 11. 04.

https://www.youtube.com/watch?v=G2FCzOxNoHg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孤竹國은 누구의 역사인가

 

고죽국은 백이·숙제의 이야기로 유명한 고대국가다.

백이·숙제는 지나(支那)의 역사서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史記)의 열전(列傳)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고, 고죽국은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제후국의 하나로 책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죽국이 당연히 은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지나(支那)의 고대국가였다고 믿고 있다.

고죽국은 과연 은나라의 제후국이었고 지나의 역사의 일부분이었을까?

 

참고문헌

고죽국의 성립과 고조선 후국의 지위/ 신용하

숙신·산융·동호는 (고)조선의 이칭(異稱)/ 황순종

고구려가 고죽국이 아니라 고죽국이 고구려 강역의 일부/ 신완순

제나라 환공의 북벌과 발조선/ 박동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기자의 본향 고죽국)/ 이기환

고죽국과 조선/ 윤용섭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孤竹國은 누구의 역사인가

출처 : 문사 2021. 03. 16.

https://www.youtube.com/watch?v=mUA4rHPxV9k

 

 

 

중국의 고대 신화집 산해경이 증언하는 단군조선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서인 산해경은 고대 중국의 신화와 지리를 다룬 책으로써 하(夏)나라의 우왕 또는 백익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산해경의 내용은 다양한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화를 포괄하고 있으면서도 뚜렷이 친 동이계적 성향을 표현하고 있다.

산해경이 우리 민족의 원형과 깊이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먼저 제시한 것은 중국의 학자들이었다. 중국의 저명한 신화학자인 손작운(蓀作雲)은 일찍이 산해경을 ‘동이계의 고서’로 규정한 바 있다.

산해경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조선, 숙신, 부여, 맥국, 등 고조선의 역사, 지리와 관련된 언급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산해경에 보이는 고대 동이족의 역사, 지리 관련 자료들을 검토해보면 이들의 활동무대는 대체로 산둥반도와 요동, 북만주를 거쳐 한반도 일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을 활동무대로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고대 신화집 산해경이 증언하는 단군조선

출처 : 문사 2020. 10. 09.

https://www.youtube.com/watch?v=VquVe2W5aaQ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패수浿水는 과연 어디인가

 

패수(浿水)는 우리 고대사의 강역을 밝힘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지명 중의 하나이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은 '패수(浿水)'였다. 패수는 옛 연(燕)나라 땅에 살던 위만이 고조선에 망명할 때 건넜던 강이고, 한나라 무제가 고조선을 침공할 때 두 나라 군대가 격전을 벌였던 장소였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패수의 위치를 다양하게 비정했다. 정약용은 압록강설, 대동강설, 요동설 등 여러 설이 있다고 언급한 후 압록강설을 지지했다. 근대에 들어 이병도는 청천강으로 비정했고 노태돈은 압록강을 지목했다. 패수를 한반도 밖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었다. 신채호와 정인보는 패수가 요동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내현은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 지금 난하 부근에 있던 고대 요동군이었다며 패수를 난하로 비정했다.

북한학계는 BC 5세기에서 4세기경, 고조선과 고대 중국의 국경은 지금의 하북성 난하였지만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2000여리 강역을 빼앗기고 난 BC 3세기에서 2세기 경의 패수는 지금의 대릉하라고 보고 있다.

 

이 패수가 과연 어디인가 하는 것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한사군(漢四郡)의 위치만큼 역사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패수浿水는 과연 어디인가

출처 : 문사 2020. 07. 20.

https://www.youtube.com/watch?v=vsteeG_gFRc&t=35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