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 河伯女와 解慕漱의 만남
요동은 험난하고 인구 희소하였으나 중* 동북 일 때와 요동에 걸쳐 동이족이 광범하게 분포하여 살고 있으면서 말을 달리고 활을 쏘고 창검을 휘둘러 전장을 휩쓰는 용맹은 중원서 으뜸이며 학문을 익혀 문무를 겸한 전형적 무사의 보고 였다 쉽사리 정복 할 수 있다면 어찌 진시왕이나 유방 같은 호전 주의자가 패수를 경계 삼아 물러갔고 각설 예로부터 송화강 연안 일대에는 비옥한 농토가 있고 강의 동북에는 산림이 울창하여 좋은 수렵지를 이루었다. 동이족은 수렵을 나가면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아 표적을 맞추는데 능숙하였다. 또 그것은 적의 침입을 대비하는 군사 훈련이기도 하였다. 왕께서도 틈만 나면 백관을 거느리고 왕검성을 나와서 수렵을 즐기셨다. 그 시대는 문무를 가리지 않고 마상에서 수렵하였다. 국가 유사시에는 불고 신명하고 헌신하는 절개는 이때부터 조선족의 미풍이었다.
그리고 송화강 일대에는 좋은 목축 지대가 있어 전마를 대량 사육하였다. 그리고 송화강은 물고기가 많이 잡혀서 왕검성 주민의 좋은 찬거리었다. 이 무렵 송화강 연안에 풍골이 신선 같고 학덕 높은 장자가 한사람 살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이곳에 살면서 큰 재산가가 되었다. 국가 유사시에는 재정을 보조하고 주민이 굶주리면 재물을 나누어 구휼하고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였다. 벼슬은 아니하여도 조정 중신들도 존경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삼신께서 용왕의 아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점지하셨다" 하여 하백이라 불렀다. 일찍이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을 두었으니 장녀는 유화요, 둘째는 훤하 셋째는 가화였다. 딸들이 외모가 모두 아름다워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특히 장녀 유화는 미색과 재주가 뛰어나서 하백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학문을 익히게 하고 고금 치세 병난의 내력과 천문지리를 익히게 하였던 바 재주가 비상하여 사리를 어렵지 않게 통달하였다. 어느 날 한 과객이 찾아와서 하룻밤 유숙을 청하였다. 하백은 과객을 사랑으로 모시게 한 후 얼굴을 가린 관을 벗은 후 자세히 다시 보니 지난 청년 시절 바로 자기를 가르친 스승이라 깜짝 놀라 사랑에 모신 후 일어나 절을 올리고 물었다. "그간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셨는지 행방이 묘연하여 한번 뵙고자 하여도 찾을 길이 없었는데 그간 어느 곳에 가셨었기에 그렇게 소식이 없었사옴니까?"하고 물었다.
선생은 웃으면서 "세상을 등진 늙은이가 볼일 없는 세상에 나타나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인적 없는 산중에서 삼신암을 지어 거처하며 짐승들과 벗하며 세월을 보냈노라." 하였다.
하백이 말하기를 "그간 세상이 너무나 변하였사옵니다. 이러한 때에 장차 또한 어떠한 변화가 올는지 소생은 불안하옵니다." 하였다. 선생이 가로되 "연나라에 변고가 일어날 조짐이니 장차 조선이 혼란을 겪고 역수 순환의 기년이 이르렀으니 하늘에는 해성이 태음을 범하고 북두칠성이 천강운전에 도를 일어 중원에 큰 변고가 있을 것이고, 대홍수가 있을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영웅 호걸이 마상에서 패권을 다투는 전란을 겪을 것이라 하였다. 수십 년만에 만난 사제간의 정담은 그칠 줄 몰랐다. 하백은 술상을 드리게 하고 딸들에게 예를 올리게 하고 옛날 아비의 스승 자부선사이신데 도통한 신선이시다 하였다. 선사가 유화를 유심히 살핀 후 그들이 나간 후에 말하기를 "큰 영애가 장차 대인을 생산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초년 파란이 두려우니 경계하고 삼가하라 하였다." 하백이 물었다. "무슨 뜻이 옵니까?" "더할 말은 없으니 신의 조화를 누가 알리오!"하고 다음날 며칠 더 머물 것을 간청하여도 끝내 듣지 아니하고 홀연히 떠나갔다. 선생이 떠난 후 하백은 여러 가지로 사색에 잠겼다. '선생은 원래 그 학문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신인이라. 우주의 기틀을 헤아리고 천기를 점치며 세상을 통찰하는 신통력이 있는지라 일부러 가르침을 받고져 하여도 얻지 못하니 어찌하랴!' 곰곰이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였다. 그것은 유화의 미색이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끌고 있음으로 무슨 사고나 생길까 불안하였다. 하백은 유화에게 엄히 경계하여 조심하도록 명하였다.
한편 유화는 도사에게 인사를 올리고 방에서 나오면서 그 도사의 태도에 이상한 감이 들어 문밖에서 잠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장차 대인물을 출산할 것이라 하니 더욱 흥분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집안은 평민이니 왕족이나 명문 거족에게 출가하기도 어려운 처지인데 무슨 구세의 대인물이 난단 말인가 의아하였다. 유화가 어느 날 꿈을 꾸니 강가에서 두 동생과 함께 놀고 있는데 비룡이 바다에서 날아와서 물고 있는 여의주를 유화에게 안겨 주며 용왕의 명으로 이 여의주를 그대에게 전한다 하였다. 놀라 깨니 삼경이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이 밝음에 하도 이상하여 치장을 하고 집을 빠져나와 송화 강가에 나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한 남자가 가까이 오더니 앉아서 말을 걸었다. "나는 고리국왕의 왕자 해모수며 틈이나서 바람 쏘이러 왔다가 아름다운 소녀가 여기 있기에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한다."하였다. 유화가 보니 기우 헌앙하고 준수한 얼굴이 과연 그가 마음속에 그리던 호남자였다. 서로가 이야기가 통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하고 유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왕자는 놓아주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부왕의 허락이 없어도 어찌하든 결혼을 성사시키겠다"고 설득하였다.
유화가 말하였다. "그러면 그때까지 기다릴 것이며 사사로이 통정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였다 왕자는 말하였다. "내가 평민의 몸이 아니니 이제 들어가면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소 그대가 끝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저 강물에 몸을 던저 죽을지언정 그대를 돌려 보낼 수 없소. 나는 지금 그대를 본 후로 나의 혼은 그대를 떠나지 못하오"하며,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유화는 진퇴양난이었다. 그의 부친 하백은 그러한 연애를 결코 용납하지 아니할 것이며 한편 만일이라도 왕자 신상에 사고가 생기면 자신뿐 아니라 일문이 화가 미칠 것인즉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왕자를 따라 그가 휴식처로 쓰는 조용한 방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거기서 밤을 세우게 되어 유화는 저녁상을 물리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것은 부친의 교훈을 어기고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달아나 강물에 몸을 던질까 하였다. 왕자가 물었다. "무엇을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소." 하였다. 유화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왕자는 감싸안으며 위로하였다. "내가 날짜를 기약할 수는 없으나 결코 그대를 잊지 않고 찾을 것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오." 하였다. 유화는 문득 간밤의 꿈을 생각하였다. "사람이란 영감이 있는데 이것도 운명적인 결과로서 하늘에 뜻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하고 마음을 돌리니 행복감마져 느꼈다." 며칠 동안 그곳에서 지낸 후 서로가 집에 돌아갈 결심을 하고 유화는 각오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하백은 유화를 보고 분통이 터졌다. 유화에게 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호통과 심한 매질이 가해졌다. 그리고 말하였다 "너는 가문을 더럽히고 아비를 욕되게 하였으니 네죄 죽어 마땅하다."하고 종자에게 명하였다. "끌어다가 우발수에 던지고 오라." 엄명하였다.
종자는 한마디도 항변하지 못하고 묵묵히 죽음의 길로 끌려오는 지난날의 금옥같이 아끼든 상전 아가씨를 보면서 강가에 이르러 배에 싣고 던질 지점에 다다르니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종자는 배를 저어 물살이 약한 곳에 밀어 던지고 뒤돌아보지 않고 돌아 왔다.
한편 해모수왕자는 때에 한구의 출몰로 출정하는 부왕을 따라 전선에서 수년을 보내고 돌아와서 유화를 찾으니 그녀의 부친이 강에 던져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남몰래 그곳을 찾아가 통곡하였다.한편 강물에 던져진 유화는 물살이 약한 곳에 던저져 혼신의 힘으로 헤엄쳐 강안으로 나오다가 지나가는 어부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한편 왕검성의 해부루 황제는 늦도록 후사가 없어 근심하여 영산을 찾아다니면서 삼신에게 기원하고 정성을 올렸다. 어느 날 기도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타고 오던 말이 전방에 조그마한 물체를 바라보며 멈추고 움직이려 하지 아니 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왕이 종자를 시켜 가져오라 하여 살펴보니 개구리를 닮은 한 아이를 보자기에 싸서 버려두었던 것이다. 왕은 기뻐하며 이것을 삼신이 점지해 주신 아이로다 하고 주어다 길러서 태자를 봉하였다. 얼굴 모양이 개구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을 금와라 하고 해부루왕이 죽은 후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에는 금와왕이라 호칭하였다.
어느 날 해부루왕은 우발수를 지나다가 우연히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한 어부가 아름다운 처녀를 한사람 우발수에서 구해 왔는데 도무지 말을 아니 하는데 범상치 않는 품위가 있다'하였다. 왕은 즉시 종자를 보내어 데려 오게 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실로 절세미인이 였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저러한 품위와 미색이 겸비한 인물이 어찌 강물 속에서 나왔단 말이냐?'하며 궁으로 데려다가 후실을 삼았더니 얼마 후에 남아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생산 날짜가 입궐하기 전에 임신하고 있었음이 분명함으로 왕이 추궁하여도 "다만 햇님의 영감으로 잉태하였다."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왕은 궁졸을 시켜 내다 버리게 하였으나 아이가 죽지 아니 하니 별실에 가두었던 유화를 풀어 주고 아이를 거두어 기르도록 허락하였다. 유화는 정성을 다하여 길렀다. 유화는 일찍이 부친 하백으로부터 배우고 전수 받은 학문과 치세의 경략 철학이 통달한 경지에 이르러 그의 아들을 훈육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아들은 재주가 출중하고 영리하여 모친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데 전력하였고 풍채가 귀골로 눈에 광채가 흐르고 품성이 공겸 활달하며 자라면서 대인지풍이 사람을 경복케 하였다. 활과 칼쓰는 법이 비상하여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함에 태자 금와가 시기하고 해를 입혀도 조금도 불평 없이 태연자약 극복해 나가니 더욱 주위 사람이 경탄하였다. 이때 태자의 주위 인사들이 태자에게 진언하였다. "추모의 인품이 비범하여 장차 큰일을 저지를 인물이오니 살려 두었다가는 저하의 장내에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미리 대비함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하였다. 태자가 말하였다. "나 또한 그가 가까이 있으니 불안하고 두렵소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물었다." 좌우에서 말하기를 "지금 대왕의 성수 높으시고 유화비의 지혜로움은 황후와 다른 비빈들이 미치지 못하오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때를 보아 불의에 격살해 버리면 됩니다."하고 결의하였다 유화비는 평소에 태자가 추모를 미워하고 그 주위를 사람들이 심히 추모를 경계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태자 주위를 근시와 궁녀 중에 심복을 두어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태자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았다. 유화비는 추모를 불러서 명령하였다. "이제 네가 이곳을 떠날 때가 왔다. 태자가 지금 너에게 틈만 생기면 해를 가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너는 곧 오이 마리 협부와 상의하여 저들의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서 빠져나가라." 하였다 동행할 세사람의 조정 중견 인물은 추모의 대인적 인품에 감복하여 함께 대사를 도모키로 합의한 인물들이다. 추모는 모비에게 아뢰었다. "동지들과 탈출할 의논을 끝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가슴아픕니다." 하였다. "너는 장차 큰일을 이루어야 할 몸이라. 사사로운 정은 금물이다 그리고 어느 곳으로 갈 것이냐?" 물었다. 추모는 말하였다. "남으로 태백산을 넘어 반도로 가면 지금은 그곳에 진시황의 연나라 침략이래 피난민이 몰려 상당수의 주민이 모였다고 합니다. 거기에 가서 그곳 주민들을 통합하여 건국의 기초를 닦으면, 한 가지는 대사를 도모할 근거를 닦고, 둘째로 적으로부터 완전히 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하였다.
이에 모비는 실망한 빛을 보이며 훈계하였다. "먼 훗날을 위하여 큰일을 꾀하는 자 험하고 위험한 가시밭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간 나는 너에게 건곤운기의 변화하는 이치를 익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총수가 될 것을 믿어 왔다. 그러한 소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너에게 전수하였으니 예로부터 그 진리는 천문 지리 인화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성공의 길이 열린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계책을 세우고 움직이고 하는 것은 그 득실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어찌 깨닫지 못하였느냐 어찌 편안함을 염두에 두고 은신의 편의를 바란단 말이냐 하였다." 이에 추모는 송구하여 몸둘 바를 모르고 "소자가 불민 하와 깨닫지 못함을 깨우쳐 주소서 하였다." 유화비는 말을 이었다. "지금 남녘 반도 산골에 자리잡아 묻혀 앉으면 소왕국을 건설하여 편안함을 얻을 것이다. 너에게 맡겨진 천명은 단군 제국의 옛영광을 찾는 대모를 달성하는 것이다. 지금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원에서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하고 초한의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동북 중원은 실로 용무할 땅이라.
지금 네가 지목한 곳은 그간 전쟁 피난민이 상당수 이주했다 하여도 지금까지 무인도와 같은 공지와 같다. 그곳에 한 무리를 이끌고 가서 정주하고 때를 갖추어 출정코자 하여도 반도 안을 통틀어 징병한들 그 병력은 오천을 넘지 못할 것이고 그것도 피난민 노약자일 것인바 중원까지의 치중 운수는 수천리의 험노인즉 대사를 도모한다는 것은 아예 거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남녘 반도는 협소한 험지로 웅비의 기지가 될 수 없느니라. 지금 형세로는 웅비의 깃털이 패수가에 있으니 장차 대사를 도모하는데 수십만 중을 동원할 수 있는 병력 자원이 있고 중원의 허실을 보아 불시에 신속히 대군이 나아갈 수 있고 물러나며 요동 산험수심한 요새지에 웅거 하야 적의 대군을 막고 능히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산동 산서 하북의 중원 고토회복을 몽매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니 대장부 세상에 나서 만백성을 구하는 위업을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의지로 처세할 것인즉 깊이 생각해 보라" 하였다. 추모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어머니가 말끝을 맺으니 크게 깨닫고 일어나 어머니에게 절하고 엎드려 고하였다.
"지금 어머니 교훈을 들으니 어두운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맑은 빛을 보는 것 같습니다. 소자 그간 학문을 배우고 처세법을 익혀 동지를 사귀어 장래에 대비하고 방법을 연구하고 병술을 익혔으나 난세에 대응하는 지혜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금옥과 같은 가르침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 명심하여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하고 밤이 깊도록 담론하였다. 이때 추모의 처 예씨는 임신 중이었다. 추모를 동행코자 하니 유화가 말렸다. "대사를 도모하는 자는 한개 아녀자를 돌볼 수 없느니라. 험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 너는 여기서 고생스러워도 나와 같이 있다가 때를 기다려라" 하고 추모에게 일렀다. "성공을 거둔 후에 반드시 데리고 가라 잊지 마라" 하였다. 후일 추모의 대성은 그 어머니의 가르침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 추모는 동지들과 약속을 정하고 다음날 새벽에 동지들과 함께 궁을 빠져나와 멀리 엄이수에 이르렀다. 추모 일행이 궁궐을 빠져 나와서 엄이수 소화강 지류에 이르니 물은 깊고 배는 없어 일행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어느덧 멀리에서 추적해 오는 군사가 보였다. 태자 금와가 자고 나서 보니 추모와 몇 사람의 그와 친교 있는 사람들이 안보였다. 예감이 이상하여 군사를 풀어 찾도록 한 것이다. 사태가 급하니 추모는 냇가에서 소리쳤다. "나는 하백녀의 아들이다. 나를 구해 다오." 강가에서 어부가 배를 저어 다가왔다. 일행을 태우고 멀리 떠나서 추격자가 강안에 도착하여 돌아오라고 소리쳐도 돌아가지 아니하니 활을 쏘아도 이미 멀리 떨어져 닿지 아니하였다. 그 일대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어부들은 평소에 하백의 陰德을 입었던 사람으로 위급할 때에 그 은혜를 갚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추모를 구한 것이다.
한편 추모가 강가에 다달아 배는 없고 그를 잡으려고 하는 군사는 추격해 오니 위급하여 나는 하백녀의 아들이다. 라고 소리치니 사방에서 용와의 명을 받은 고기떼가 몰려와서 강물 위를 메워 한개의 배를 만드니 고기등에 올라 무사히 걷넜다고도 한다. 어째든 기적이 일어나서 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북으로 향하여 한 골짜기에 이르렀을 적에 괴이한 옷차림을 한 세사람을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 모두 장자풍이라 한 사람은 이름이 제사라 하고 한 사람은 무골이라 하고 한 사람은 묵거라고 하였다 우리가 귀인을 기다린지 오래입니다. 옛날 자부 선인께서 장차 천지 기수가 바뀔 때가 올 것이니 때가 되면 반드시 귀인이 이곳으로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제 귀인을 보니 기모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였다. 추모는 그 세사람이 학문과 경륜이 출중함을 보고 상빈례로 맞아서 동행하였다. 그들은 졸본천에 이르러서 건국한 후 각기 중책을 맡아서 고구려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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