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회부터는 만주원류고 권3 부족 백제편 번역을 시작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만주원류고는 청나라가 편찬한 공식사서이고, 우리 사학계의 견해와 다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백제편에도 그러한 것을 다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번역할수록 힘에 부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기회로 삼고 있으니 회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기대합니다. 기록하였다. 尉仇台之後 故以夫餘為姓 諸史往往 刪去夫字誤) 為鎮東将軍領樂浪太守 孝武帝 太元十一年 以百濟世子 餘暉 為鎮東将軍 百濟王 6월 사신을 보냈다. 백제왕 여구餘句 (살피건대 백제는 부여왕 위구태尉仇台의 후예이다. 그러므로 부여를 성으로 삼았다.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11년 백제 세자 여휘餘暉 에게 <진동장군 백제왕>의 직함을 주었다.”라고 되어 있다. 為使持節督 百濟諸軍事 「통전通典」 에는 “진나라 의희義熙 연간에 백제왕 부여전夫餘腆 에게 <사지절독 백제 제군사>의 직함을 주었다”고 되어 있다. 百濟後漸强大 兼諸小國 晉時 句麗既畧有遼東 百濟亦畧有 遼西晉平(唐栁城 北平之間) 自晉以後 吞併諸國 據有馬韓故地 南接新羅 (另條詳後) 北拒髙麗千餘里 西限大海 處小海之南 自晉代受藩爵 自置百濟郡 중 백제는 그 하나이다. 초기에 백가를 다스렸다고 하여 백제라는 이름을 얻었다. 백제는 뒤에 점차 강대해져서 여러 소국을 합쳤다. 진晉대에 고구려는 이미 요동遼東을 차지하였고, 백제 또한 요서遼西 진평晉平 (당나라 유성栁城과 북평北平 사이)을 차지하였다. 상세하게 기술) 북으로 고구려와 천여리 떨어져 있으며 서쪽은 대해大海이며 소해小海의 남쪽에 있다. 진대 이후 번국蕃國으로서의 작위를 받아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이 되었다. 地多下濕 率皆山居 남쪽으로 바다를 지나면 곧 왜국이다. 진나라 때에 번국蕃國으로서의 작위를 받아 스스로 백제군이 되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토착민이 많다. 땅은 낮고 습한 곳이 많아 가솔들을 이끌고 산에서 산다.”고 되어 있다. 荷國休可 鎮東大将軍 持節都督 王公 如故 晉平縣 주었다. 영映이 의리를 다해 멀리 바다바깥에 있으면서도 수호사신을 보내고 그 직책을 잘 수행하여 나라일을 잘 돌보니 <진동대장군 지절 독 왕공>으로 높여 주었다.”고 되어 있다. 경략하여 차지하고,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곳을 진평군晉平郡 진평현 晉平縣 이라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少帝景平二年 映遣長史 張威詣闕貢獻 元嘉二年 太祖詔之曰 皇帝問 使持節都督 百濟諸軍事 鎮東将軍 百濟王 累葉忠順 越海效誠 慕義既彰 厥懷亦欵 桴驪水 獻琛執贄 故嗣位方任 以藩東服 勉朂所莅 無墜前蹤 今遣兼謁者問丘恩子 兼副謁者 丁敬子等 宣旨慰勞 稱朕意 其後 每嵗遣使 奉表 獻方物 고조髙祖가 즉위하여 <대장군>으로 올려 주었다. 소제 少帝 경평景平 2년 영映이 <장사長史> 장위張威를 보내 조정에 공물을 보냈다. 원가元嘉 2년 태조가 조서를 내려 말하길 “황제가 알리노라, <사지절 도독 백제 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은 여러 해 동안 충성하고 순종하였으며 바다를 건너 정성을 나타내었소. 폐백을 보냈소. 그러므로 왕위를 잇게하여 나라를 맡기기 나라의 번이되어 동쪽을 굴복시키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선대의 업적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시오. 위로 하노니 짐의 뜻을 헤아리기 바라오.”라고 하였다. 그 뒤 해마다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과 방물을 보냈다. 易林 占式 腰弩 太祖並與之 毗死 子慶 代立 世祖 大明元年 遣使 求除授 詔許之 二年 慶遣使 上表曰 臣國累葉 偏受殊恩 文武良輔 世蒙朝爵 行冠軍将軍 右賢王 餘紀等 十一人 忠勤 宜在顯進 伏願垂愍 並聴賜除 仍以 行冠軍将軍 右賢王餘紀 為冠軍将軍 보내면서 <대사臺使> 풍야부馮野夫 를 <서하태수>로 임명하는 것을 추인해 주고, 역림易林 점식占式 요노腰弩 를 요청하였는 바, 태조가 모두 들어 주었다. 비가 죽자 아들 경이 왕위를 이었다. 세조 대명 원년 사신을 보내 벼슬을 요구하자 이를 허락하였다. 신하들이 조정의 작위를 받았는 바,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餘紀 등 11명은 충성스럽고 부지런하여 높은 지위에 나아감이 마땅하니 바라건대 이들에게 벼슬을 주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餘紀를 <관군장군>으로 以行龍驤将軍 沐衿 餘爵 並為龍驤将軍 以行寧朔将軍 餘流糜貴 並為寧朔将軍 以行建武将軍 于西 餘婁 並為建武将軍 여도餘都와 여예餘乂는 같이 <보국장군>으로, <행용양장군> 목금沐衿 과 여작餘爵 은 같이 <용양장군>으로, <행영삭장군> 여류餘流와 미귀糜貴는 같이 <영삭장군>으로, <행건무장군> 우서于西 와 여루餘婁 는 같이 <건무장군>의 지위를 주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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