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한국(BC7197)

≪주역≫의 복희팔괘(伏羲八卦)

자연정화 2018. 7. 1. 15:43

≪주역≫의 복희팔괘(伏羲八卦)

 

팔괘문 / 팔괘의 생성설

 

팔괘는 천지 만물의 현상의 기본이 되는 8가지를 나타낸 일종의 상징부호이다. 팔괘사상은 태극의 철학적 의미와 함께 동양의 세계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서는 팔괘가 그려지는 과정에 대해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황하에서 하도(河圖)가 나오고 낙수에서 낙서(洛書)가 나오니 성인이 이것을 본떴다는 내용으로, 후세의 학자들은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帝王)인 복희가 하도를 본떠 팔괘를 지었다고 하였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인 주희(朱熹, 1130~1200)의 『역학계몽(易學啓蒙)』에는 하도와 낙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공안국(孔安國)은 말하였다. 하도는 복희가 천하를 다스릴 때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지고 나왔다는 무늬를 본떠서 팔괘를 그린 것이다. 낙서는 중국 하나라의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씌어 있었다는 점으로 된 아홉 개의 무늬이다.

 

둘째로, 복희가 천지만물의 형상을 살피고 몸과 사물에서 취하여 팔괘를 그렸다는 것이다. 위로는 일월성신의 천상(天象), 아래로는 산천(山川)의 지형을 관찰하고, 나아가서는 새와 짐승의 모양, 초목의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관찰하여 그것을 종합해 팔괘를 창조하였다는 내용이다.

 

셋째는 태극에서 양의(兩儀)와 사상(四象)의 순서를 거쳐 팔괘가 생성되었다는 이론이다. 여기서는 양의, 즉 음양(陰陽)에서 사상이 생겨나고 사상에서 팔괘가 생겨난다는 음양이원론(陰陽二元論)의 원리에 의해 설명하였다. 태극은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의 상태로 우주 만물 구성의 근원이 되는 본체이다. 사상은 음양의 4가지 현상으로 태양(太陽)·태음(太陰)·소양(少陽)·소음(少陰)을 일컫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3가지 내용을 통해 주희는 팔괘의 생성이 하도에 의해서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간에 가득한 태극 음양의 심오함 속에서 성인이 관찰하고 구하고 취하여 그 마음과 부합되어 생성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팔괘무늬의 상징성

팔괘문은 역효문(易爻文)이라고도 하며, 선이 나누어지지 않은 불분선(不分線)과 선이 나뉘어진 가분선(可分線)을 조합한 것이다. 음양을 표시하는 최소 단위 부호를 효(爻)라고 하는데, 양효(陽爻, 불분선)를 표현하는 부호는 ―이고 음효(陰爻, 가분선)을 표현하는 부호는 --이다. 양은 하늘을, 음은 땅을 근본으로 한다. 천지 창조는 하늘이 시초이므로 하나[一]를 의미하는 ―로 양(陽)을 표시하고, 하늘 다음인 땅은 둘[二]을 의미하는 --로 음(陰)을 표시하였다. 효가 3개 거듭하면 소성괘(小成卦)가 성립되는데, 팔괘는 소성괘 8개로 구성된 것이다.

 

팔괘는 복희씨가 만든 선천팔괘(先天八卦)와 주문왕(周文王)이 새로 고안한 후천팔괘(後天八卦)로 구분된다. 선천팔괘는 자연의 이치 그 자체를 가감 없이 그대로 묘사해 놓은 체계이며 후천팔괘는 인간의 기본적 성정(性情)이 반영된 것이다. 선천팔괘와 후천팔괘는 괘가 나열되어 있는 방위의 차이로 구분한다. 인간의 길흉소사에 응용하는 방위법은 후천팔괘의 것을 따르고 있다.

 

팔괘에는 음양소장(陰陽消長, 음양의 쇠해짐과 성해짐)의 상태와 모든 길흉화복의 상징성이 함축되어 있다. 옛 사람들은 천지 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일상생활에서 실천한다면 인간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이 자연의 도에 합치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팔괘는 인간의 행복 및 복록(福祿)의 추구를 상징하게 되었다. 팔괘를 이루는 각 괘의 형태와 명칭, 그와 관련된 상징성을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효(爻)

괘의 명칭

상징

방위

사상

자연

짐승

인체

가족

 

건(乾)

굳셈[健]

북서

太陽

하늘

머리

아버지

 

태(兌)

기쁨[悅]

少陰

막내딸

 

이(離)

붙듦[麗]

少陰

둘째딸

 

진(震)

움직임

少陽

번개

맏아들

 

손(巽)

겸손[入]

남동

少陰

바람

다리

맏딸

 

감(坎)

험난[陷]

少陽

돼지

둘째아들

 

간(艮)

멈춤[止]

북동

少陽

막내아들

 

곤(坤)

유순[順]

남서

太陰

어머니

 

 

 

팔괘무늬의 조형적 특징

 

1. 훈민정음·태극기

음양사상으로부터 비롯된 팔괘는 우리나라 최대의 문화적 성과인 훈민정음 창제의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의 제자해(制字解)를 보면 ‘천지의 도(道)는 오직 음양오행일 뿐이다.’ 라고 하였고, ‘곤괘(坤卦)와 복괘(復卦, 64괘의 하나)의 사이가 태극이 되며 동(動)하고 정(靜)한 후에 음양이 된다.’고 하여 역의 이치가 훈민정음의 기본원리가 됨을 밝히고 있다.

팔괘무늬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는 태극기이다. 태극기는 백색을 바탕으로 하여 중앙에 음(陰, 靑)·양(陽, 紅)의 화합을 상징하는 일원상(一圓相)의 태극이 있고, 네 귀에는 팔괘 중 건(乾)·곤(坤)·감(坎)·이(離)의 4괘가 배치되어 있다.

건·곤·감·이의 4괘는 중앙의 태극과 뗄 수 없는 관계에서 배열된 것으로, 음양이 생성, 발전된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건(乾)은 태양(太陽)으로서 양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고, 곤(坤)은 태음(太陰)으로서 음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어 있다.

 

감(坎)은 소양(少陽)으로 음(陰) 속에서 음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이(離)는 소음(少陰)으로 양(陽) 속에서 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태양인 건에서 소음인 이로 바뀌고, 이에서 태음인 곤으로 성장하며, 또 곤에서 소양인 감으로 바뀌고, 감에서 태양인 건으로 성장하여 무궁한 순환 발전을 상징한다.

건은 하늘을 상징하며 지선(至善)·지공(至公)의 정의(正義)를 의미하고, 곤은 땅을 상징하며 후덕(厚德)과 풍요의 공리(共利)를 상징하며, 감은 수성(水性)으로서 지혜와 활력을 나타내고, 이는 화성(火性)으로서 광명과 정열을 뜻하며, 백색 바탕은 평화의 정신을 상징한다.

 

2. 조형물에 나타나는 팔괘무늬

 

<궁중유물전시관> - 좌독기

 

팔괘문은 행복의 상징으로 거울을 비롯해 건축의장으로써 와당(瓦當)이나 각 부재의 구성, 각종 가구, 청동화로와 같은 금속공예품, 자수품, 노부류 등에 배치되어 행복과 복록(福祿)을 추구하는 뜻으로 쓰였다.

 

특히 가구에 쓰이는 각종 금속 장석에 팔괘무늬가 투각된 예가 많다. 궁중유물전시관 소장품 중 <장침마구리>에는 중앙에 삼태극(三太極)을 두고 네 귀에 진(震)·이(離)·태(兌)·감(坎)괘를 수놓았다. 또한 노부류에서는 <팔괘기(八卦旗)>·<팔풍기(八風旗)>·<고조기(高照旗)>·<좌독기(坐纛旗)> 등에 팔괘무늬가 나타난다.

 

조형물에 팔괘가 나타날 때에는 팔괘무늬 뿐만 아니라 하도·낙서와 함께 배치되기도 한다. <좌독기(坐纛旗)>를 보면 중앙에 태극을 중심으로 낙서(洛書)의 수(數)와 팔괘가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백영자. 『조선시대의 어가행렬』. 1994; 서울: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1997.

임영주. 『전통문양자료집』. 1986; 서울: 미진사, 2000.

임영주. 『한국전통문양』제1권 기하학적 문양과 추상문양. 서울: 도서출판 예원, 1998.

한국문화상징사전 편찬위원회.『한국문화상징사전』2. 1995; 서울: 두산동아, 200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편찬실 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3. 1991;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허균. 『전통 문양』. 1995; 서울: 대원사, 2002.

 

<논문>

박경희. 「태극음양론을 통해본 한국도자의 특성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

이영희. 「팔괘 문양의 금속 장석을 이용한 가구 디자인 연구」. 홍익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5.

 

 

주역(周易)은 점술일까 철학일까?

출처 : 주간조선 2016. 09. 12.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 태극팔괘도. 8괘가 2개씩 조합을 이뤄 64괘를 구성.

 

흔히 점집에 ‘철학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그렇다면 ‘점술(占術)이 곧 철학’이란 말인가. 과거에는 철학이 지혜 또는 학문 전반을 의미했다. 아득한 옛날에는 ‘점술이 곧 철학’이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이 바로 ‘주역(周易)’이다.

 

도대체 ‘주역’이란 무엇일까. ‘주(周)’는 주나라를 가리킨다. ‘역(易)’은 변화한다는 뜻이다. 글자로만 본다면, 주나라 때 만들어진 변화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The Book of Change’라고 한다. 고전이 대부분 불변의 무엇을 찾는 데 반해, 주역은 변화 그 자체를 주제로 삼는다. 변화가 곧 생(生)이라는 것이 주역의 관점이다.

 

주역은 ‘하나가 둘을 낳는다(一生二)’는 원리에 입각해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 즉 음양)를 낳고 양의가 4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8괘(八卦)를 낳는다.” 태극은 만유(萬有)의 본바탕이다. 그것은 음양의 절묘한 균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것은 음양으로 쪼개진다. 음양은 만유를 분별하는 가장 기초적인 범주이다. 음양을 둘씩 조합하면, 4상이 된다. 그것은 좀더 세분된 범주이다.

 

이때 음과 양을 표시하는 부호(--, ㅣ)를 효(爻)라고 한다. 4상에 음이나 양을 하나씩 더 포개면, 3효로 구성된 8괘가 만들어진다. 3효는 곧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바, 이런 우주적 원리를 담는 것이 바로 8괘이다. ‘괘(卦)’란 ‘걸다’라는 뜻으로, 만유가 거기에 ‘걸린다’는 함의를 갖는다. 실제로 8괘는 만유의 속성을 완전하게 반영한다. 8괘의 상징과 의미는 64괘가 되어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그 뜻이 다양하고 풍부해질 따름이다.

 

8괘를 두 개씩 조합하면 64괘가 만들어진다. 64괘는 3효가 중첩되어 6효로 이루어진다. 효를 기준으로 보면, 384개(64괘×6효)의 하위 범주가 생성된다. 범주는 너무 단순해도 문제지만, 너무 복잡해도 문제이다. 주역은 8괘의 속성이 중첩된 64괘를 가장 적절한 범주로 보고,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64괘 384효가 주역의 기본체계를 이루게 된다.(실제로는 특별한 경우를 위한 효가 2개 더 있다.)

 

고대 사람들은 거북껍데기, 소뼈 등을 태워 무늬가 번져나간 모양으로 점을 쳤다. 그러나 그 양상이 불규칙하여 결과를 판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풀줄기를 한 움큼 쥐고 적당한 방법으로 나누고 뽑아 숫자를 얻고, 그 숫자를 통해 점을 보기 시작했다. 이런 방법은 판독도 용이했고, 결과를 범주화하여 축적하기도 쉬웠다. 이것이 주역의 탄생 배경이라고 추측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것은 일종의 분류 기호라고 볼 수 있다. 차츰 점친 결과가 축적되었고, 문자가 생겨나면서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64괘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설명한 기록이 확립되었는데, 그것을 괘사(卦辭)라고 한다. 또한 386효에 대한 기록도 확립되었는데, 그것을 효사(爻辭)라고 한다.

 

전승(傳承)에 따르면, 괘를 만든 이는 복희씨(伏羲氏)다. 그는 중화민족의 전설적인 시조(始祖)이다. 또한 괘사와 효사를 지은 것은 주문왕(周文王)과 그의 아들 주공(周公)이다. 괘사와 효사를 모아놓은 책이 곧 ‘역경(易經)’이다. 역경은 워낙 상징적이고 함축적이다. 후대에 공자가 그 이해를 돕기 위해 단전(彖傳) 등 10편의 해설서를 저술했다. 이것이 곧 ‘역전(易傳)’이다. 주역(周易)이란 바로 역경과 역전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후대에 공자에 대한 평가가 높아짐에 따라 역전 중 일부를 아예 역경에 포함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역경’ 해석서(일부). 굵은 글씨가 역경 본문이고 작은 글씨는 해석.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는 위대한 성인이다. 그들이 주역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공자는 죽간(竹簡)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역경을 탐독했다. 여기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고사가 유래했다. 그러나 주역은 몇몇 특정인이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고뇌가 축적된 결과일 것이다. 성인들에 의한 성립설은 주역의 가치를 그만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 이후에도 주자(朱子) 등 수많은 학자들이 앞다퉈 주역에 대한 해석서를 냈다. 오늘날에도 학인(學人)들이 끊임없이 자신만의 해석서를 내고 있다. 아마 주역은 도서관 서가에 최신 해석서가 가장 많이 진열된 경전일 것이다. 주역은 내용이 상징적이라, 그만큼 해석도 다양하다. 오늘날에도 점술에서 인문철학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이 다채롭다.

 

그러나 주역의 시작은 점술이다. 어떤 문제를 염두에 두고, 댓 가지 묶음을 나누고 뽑고를 반복해 숫자를 몇 개 얻는다. 이를 통해 그 문제가 처한 괘와 효를 알아낸 다음, 해당 괘사와 효사를 참고한다. 괘가 일반적인 범주 또는 상황이라면, 효는 구체적인 범주 또는 상황이다. 따라서 괘사를 통해 그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를 얻고 효사를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체로 괘사나 효사는 “무엇이라면 길하다(또는 흉하다)”라는 조건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에 힘써 길함을 얻든지 ‘무엇’을 삼가여 흉함을 벗어나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양효(ㅣ)가 여섯 개 쌓인 중천건괘(重天乾卦)의 첫 번째(맨 아래) 효의 효사가 그 유명한 ‘잠룡물용(潛龍勿用·물에 잠긴 용이니 움직이지 마라)’이다. 준비가 덜 된 사람은 내실을 기해야지, 섣불리 움직이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괘사나 효사는 결코 운명에 대한 판결문이 아니다. 오히려 민감한 실마리만 제공하여 개방적인 해석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것을 점괘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수신(修身)의 지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중적 측면을 주목한 사람이 공자이다. 그는 주역을 통해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자신을 연마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을 제안했다.

 

세상사에 대한 인간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점술의 필요성은 감소했다. 그럼에도 미래가 궁금한 것은 인간의 절박한 본능이다. 그렇다고 점은 함부로 칠 수 없다. 거기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마음을 깨끗하게 다스릴 수 있나? 점치는 목적이 올바른가? 괘를 얻는 과정은 완전한가? 해석은 제대로 할 수 있나? 이런 조건을 충족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기독교에서는 점술 자체를 아예 ‘사악한’ 죄로 단정한다.

 

그럼에도 점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역은 어떤 식이든 점술에 권위를 부여하는 근거로 이용된다. 동시에 그것은 수신의 지침으로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주역이다.

 

 

≪주역≫의 계사전(繫辭傳) 사상(四象)

 

≪주역≫의 복희팔괘(伏羲八卦)와 64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음(――)과 양(─)이 처음 중첩되어 이루어지는 네 가지 형상, 또는 이 네 가지 형상이 상징하는 자연의 네 가지 원소 또는 그 변화 상태.

 

사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보이는 곳은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이다. 즉, “역에 태극이 있으니 양의를 낳고 양의는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고 하여 팔괘가 태극·양의·사상의 단계를 거쳐 형성됨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역에 사상이 있음은, 보이고자 하는 것(易有四象 所以示也)"이라고 하여 사상이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자연 현상을 상징함을 언명하였다.

 

이 두 가지 의미, 즉 팔괘 형성의 한 단계로서의 사상과 자연 현상의 상징으로서의 사상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대연의 수는 오십인데 사십구만을 쓴다. 사십구를 둘로 나눔은 둘[兩]을 상징함이고, 하나를 걸음은 셋을 상징함이고, 넷으로 나눔은 사시(四時)를 상징함이다…”라는 말이다.

 

이는 설시(揲蓍)하여 괘를 구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서, 쉰 개의 시초(蓍草) 중에서 하나를 제외한 마흔아홉 개를 임의로 둘로 나누고, 이것을 각각 넷으로 나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이 과정에서 처음부터 쓰이지 않는 하나의 시초를 태극, 마흔아홉 개를 둘로 나눔을 양의, 그리고 그것을 각각 넷으로 나눔을 사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넷으로 나눔은 사시를 상징한다”라는 말은 사상의 과정이 곧 자연 현상에 있어서의 사계절의 변화를 상징한다는 뜻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사상은 본래 점서(占筮)에 있어서 시초에 의한 점법에 나타나는 과정의 하나인데, 여기에 태극·양의·사상이라는 일종의 철학적 개념, 즉 존재의 근원과 자연 현상에 대비하는 사상(思想)으로 발전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사상의 개념은 시대의 변천과 각 시대의 주도적 사상에 의해 변화, 발전되었다. 중국 한대의 상수학자(象數學者)들은 월령(月令)과 납갑법(納甲法), 오행설(五行說) 등에 의해 일종의 과학적, 자연 철학적인 해석을 했다.

예컨대, 우번(虞翻)이 “사상은 사시(四時)이다. 양의는 건곤(乾坤)이다. 건괘의 이효와 오효가 곤괘로 가서 감(坎)·이(離)·진(震)·태(兌)를 이룬다. 진은 봄, 태는 가을, 감은 겨울, 이는 여름이며, 그래서 양의가 사상을 낳는다고 한다”라고 말한 것, 맹희(孟喜)와 경방(京房)이 괘기설(卦氣說)에 의해 사상을 사시로 보고 여기에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오행 등을 배합한 것, ≪건착도 乾鑿度≫의 팔괘방위설(八卦方位說) 등이 그것이다.

 

당나라의 공영달이 사상을 금(金)·목(木)·수(水)·화(火)라고 한 것도 오행설에 입각한 것이었다. 전국시대 이래의 오행설에서 탈피하여 사상에 대한 독창적인 자연 철학을 수립한 인물은 송대의 소옹(邵雍)이다. 소옹은 철저히 ≪주역≫의 계사전을 계승, 발전시켰다.

 

계사전의 음양·동정(動靜)·강유(剛柔)·천지(天地)의 개념과 그 철학에 입각하여, “천은 동, 지는 정에서 생겨났고, 동과 정이 교차하여 천지의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전제하고, “동이 시작되어 양·동이 극하면 음이 발생하며 정이 시작되어 유·정이 극하면 강이 발생한다”고 하여, 동에서 천의 음양 운동이 발생하고 정에서 지의 강유 변화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동이 큰 것은 태양(太陽), 동이 작은 것은 소양(少陽), 정이 큰 것은 태음(太陰), 정이 작은 것은 소음(少陰)이라 한다”고 하여 물질 운동의 상반된 양면인 동과 정, 그리고 운동의 정도를 태·소로 구별하였다. 일반적으로 사상을 태양·소양·태음·소음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소옹은 지의 사상을 태강·소강·태유·소유라 하여, 천지의 변화를 각각 네 가지로 구별하고 여기에 구체적인 자연 현상을 분속시켰다. 즉, 태양은 해[日]·더위[暑], 소양은 별[星]·낮, 태음은 달[月]·추위[寒], 소음은 별[辰]·밤이라고 하고, 태강은 불[火]·바람, 소강은 돌[石]·우레[雷], 태유는 물[水]·비[雨], 소유는 흙[土]·이슬[露]이라고 하였다.

 

천의 해·달·별(星과 辰)이 작용하여 더위·추위·밤·낮의 변화가 발생하고, 지의 물·불·돌·흙이 작용하여 비·바람·우레·이슬의 자연 현상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소옹은 사상에 의한 자연 현상의 분류를 하도(河圖)·낙서(洛書)의 선천·후천 도수에 배합하기도 하였다.

 

주희는 ≪역학계몽 易學啓蒙≫에서 소옹의 선천·후천 도수와 오행설을 결합하여 태양은 9, 소음은 8, 소양은 7, 태음은 6이라고 하였고, 각각 수·화·목·금에 배합하였다. 이와 같이 사상은 중국 철학사에 있어서 오행설과 역학의 상수론(象數論)에 의해 해석되어, 자연과 인간을 철학적·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주역≫에 대한 연구가 심화된 조선조에서도 사상에 대한 연구가 보인다. 서경덕(徐敬德)은 소옹의 학설을 계승하여 “천에는 사신(四辰 : 日·月·星·辰)이 있고 ……일월성신은 천에서 상(象)을 이루고 수화토석은 지에서 질(質)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그의 ≪온천변 溫泉辨≫·≪성음해 聲音解≫에는 사상론에 입각한 철학적·과학적 사유가 잘 나타나 있다. 이황(李滉)은 ≪계몽전의 啓蒙傳疑≫에서 주희의 ≪역학계몽≫에 보이는 사상에 관해 더욱 심도 있는 설명을 하여 ≪황제내경≫의 운기론(運氣論)과 ≪황극경세서≫의 이론 등을 자세히 분석하였다.

 

특히, 납갑(納甲)·비복(飛伏)·점서 등에 대한 제가(諸家)의 이론을 도상화하여 분석한 점이 특징이다. 즉, 사상을 오행·월령·간지·점서·방위·하도·낙서 등에 배열하여 전국시대 이래의 모든 자연 철학을 총괄했는데, 이러한 연구는 장현광(張顯光)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다.

 

장현광의 문집인 ≪여헌선생문집 旅軒先生文集≫의 성리설과 역학도설(易學圖說)은 이전의 모든 역설(易說)을 총망라하여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주역≫의 상수학적 관심에서 일단 벗어나 고전의 본래적 의미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는 고증적 방법으로 사상을 연구한 학자로서 정약용(丁若鏞)을 들 수 있다.

 

그는 ≪주역사전 周易四箋≫에서 “사상이란 사시의 상이다. 천이 밖에서(지를) 감싸고 일·월이 운행하고, 천·지·수·화의 기가 그 사이에서 항상 운동한다”, “사시는 십이벽괘(十二辟卦)이다”, “(사상의) 사는 천·지·수·화가 체질이 각각 나뉘고 위차(位次)에 차등이 있음이다. ……천과 화가 함께하여 뇌(雷)와 풍(風)이 생겨나고, 지와 수가 어울려 산(山)과 택(澤)이 이루어진다”라고 하여, 사상을 사계절의 변화와 팔괘를 생성하는 네 가지의 기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우번, 정현(鄭玄)이 사상을 남녀장소(男女長少), 수·화·목·금으로 해석한 것을 비판하였다. 조선 말기의 의학자인 이제마(李濟馬)의 ≪동의수세보원 東醫壽世保元≫은 사람의 체질(體質)을 사상으로 분류하여 치료한 독창적인 의서이다. 사상의 의학적 연구 성과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 주역정의(周易正義)

▷ 황제내경(黃帝內經)

▷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

▷ 화담집(花潭集)

▷ 퇴계집(退溪集)

▷ 여헌선생문집(旅軒先生文集)

▷ 여유당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