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민족의 기원

② 한민족의 뿌리, 몽골의 역사와 문화

자연정화 2018. 7. 20. 13:28

② 한민족의 뿌리, 몽골의 역사와 문화

몽골국립박물관, 선사시대(약 80만 년 전~기원3세기)~ 민주화시대까지 관련 유물 전시

 

출처 : 한려투데이 2013. 07. 22. 채흥기 기자

 

동몽골 헨티 아이막 노르빌린 솜 살히트 4~5먼 년 전 고인류 화석 출토

몽골 전통 종교 창시자 자나바자르가 고안한 ‘서염보’문자 전시

 

 

75~80만년 전 석기 고비 출토

 

몽골국립박물관은 선사시대(약 80만 년 전~기원 3세기), 고대국가시대(기원전 3세기~12세기), 몽골제국시대(13~14세기), 전통의상과 장신구, 전통문화(17~20세기), 생활방식, 17~20세기의 몽골, 몽골 1911~1920년, 사회주의 시대의 몽골(1921년~1980년), 민주화시대의 몽골 구간으로 나뉘져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곳에 가면 몽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칭기스칸의 디나르 금화

 

▲ 몽골 군인의 쇠사슬 갑옷

 

▲ 부싯철과 칼(위), 담배파이프와 주머니(아래)

 

▲ '모린 호르' 마두금, 몽골의 전통악기

 

▲ 대형 수레 차관(국보)

 

특히, 몽골과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자를 갖고 있어 몽골 역사에 대해 좀더 세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몽골은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했던 곳으로 최근 동몽골 헨티 아이막 노르빌린 솜 살히트 유적에서 4~5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류 화석이 출토됐으며, 75~80만년 전 석기가 남쪽 고비지역에서 출토됐다. 각종 석기와 목걸이, 코끼리, 낙타, 사슴 등 다양한 가축의 바위그림 등이 발견됐다. 기원전 3,000년~기원전 3세기의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는 청동귀걸이, 칼, 사슴돌, 판석묘, 200여 곳의 바위그림, 청동 솥, 토기 등이 발견됐다. 이외 장식, 띠고리,청동 화살촉, 청동재갈, 투구와 무기류 등이 호브드 아이막 유적지에서 발견돼 전시되고 있다.

 

오브스 아이막 중심 도시인 울란곰 서남쪽 찬드만산에서 초기 철기시대 고분군 57기가 1972년 발굴돼 단검, 도끼, 거울, 칼, 화살촉 및 각종 동물장식 등 부장품이 출토됐다. 기원전 7~4세기로 추정된다.

 

고대국가시대는 흉노제국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부터 돌궐 칸국시대(6~8세기), 위구루 칸국시대(8~9세기), 거란시대(10~12세기)로 나눠 각종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흉노시대는, 기원전 209년 묵특이 정권을 잡은 후 만주 동호 복속과 감숙지방 월지국을 붕괴시켜 최초의 유목제국을 수립했다. 이때 중국의 한나라가 조공을 바칠 정도로 강성했다. 무덤, 토성, 바위그림, 청동 솥, 청동주전자, 카펫, 뼈젓가락, 황금장식, 금동말모양 장식, 금제허리띠, 옥기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 샤먼의 복식

 

▲ '운두르 게겡' 잔바자르(몽골 전통 종교 예술이 창시자)

 

▲ 잔바자르가 고안한 '소염보'문자 체계. 현재 국가상징이다.

 

돌궐․ 거란․ 몽골제국시대 조망

 

돌궐시대는 펠트를 덮은 게르에 살고, 가축과 함께 이동하는 투르크계 유목민으로 유연에 복속돼 알타이산맥 서남부에 거주했다. 초기 강성했다가 나중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뉘졌고, 동돌궐은 630년 중국 당나라에 복속됐다가 50년후 다시 독립, 744년까지 존재했다. 금관, 금제허리띠, 금장식, 석인상, 은제사슴 등이 빌게 카칸 제사유적에서 발견돼 전시되고 있다.

 

위구르시대 유물로는 룬문자 새겨진 골제 활부속구, 투르판벽화, 건축용토제품, 금귀걸이, 골제단추, 수막새 등이 있다. 위구르족은 744년 카르록과 바스밀 등 유목 부족들과 연합해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칸국을 건설했다. 840년 키르기즈족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1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을 지배했다.

 

아르항가이 아이막 호탕트 솜 지역에 당시 수도인 하라발가스 흔적이 있으며, 소그드인들의 영향으로 문자사용과 변화가 발달했다.

 

거란은 몽골계의 한 종족으로 916년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합, 거란국을 세운 후 서쯕으로 탕구르, 위구르, 몽골 등 여러 부족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발해를 공격해 멸망시켜 만주 지역까지 영역을 확보했다. 3차에 걸쳐 고려를 침공했다. 1차 침입(993년)시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을 성공시켰다.

 

2차 침입(1010년)시 양규 장군 등의 활약으로 거란을 물리쳤고, 1018년 3차 침입시 거란은 강동6주 반환을 요구하면서 소배압이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침입했다. 그 유망한 강감찬의 귀주대첩에서 거의 전멸됐고, 이후 북방민족의 침입을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았다. 이처럼 거란은 고려와 악연을 갖고 있다. 거란은 나중에 요로 국호를 변경했다. 골제주사위, 도제인물상, 골제칫솔 등 유물이 전시돼 있다.

 

▲ 몽골국립박물관

 

▲ 나담축제 중 열리는 말달리기 축제

 

몽골제국시대(13~14세기)는 태평양연안에서 동유럽, 시베리아, 남아시아 50여 민족국가가 몽골제국 지배하에 놓였다. 이는 당시 세계 영토의 절반이 해당됐다. 이시기인 1274년, 1281년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이 있었다.

이후 몽골 올로스, 원나라, 페르시아 일칸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알탄 노로드 칸국, 중앙아시아의 차카타이 칸국 다섯 개 칸국으로 나눠 통치했다. 종교와 역사, 언어가 다른 여러 나라를 통치해 아시아와 유럽의 다리 역할을 했다. 여러 국가에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189년 예수케이 바토르의 아들 테무진이 하막 몽골 칸국의 칸 자리에 즉위해 ‘징기스칸’ 칭호를 받았다. 1206년 몽골제국 통일과 1224년 중앙아시아 호라즘 제국 복속하는 등 아시아 최강국이 돼 1세기 동안 글로벌리즘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후 원나라, 일칸국, 차카타이칸국, 킵챠카칸국 등으로 분열됐다.

 

이곳에는 활 및 화살통, 말안장, 대도, 등자 등과 징기스칸(1162년~1227년)과 그의 아들 우구테이 칸(1187년~1241년)과 손자 구유크 칸(1206~1248년), 뭉케 칸(1208년~1259년), 쿠빌라이 칸(1215년~1249년) 등 초상이 전시돼 있다.

 

또 국가의 상징인 ‘자간 술로드’(흰색 말꼬리털 등으로 만든 깃발)와 군대 상징인 ‘하르 술르드’, 징기스칸의 ‘디나르’ 금화, 화폐, 석인상, 몽케칸 비석, 은제 패식, 진주목걸이, 쿠빌라이칸의 해군 물통(일본 주변 바다에서 발견), 귀족 의상, 가죽갑옷, 신발, 쇠사슬 갑옷, 철판 갑옷 등이 전시돼 있다.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하라호롬에서 출토된 토기 등 다양한 유물도 전시돼 있다. 하라호롬에 따로 나중에 언급하겠다.

 

2005년 독일과 공동으로 발굴 조사한 토기 가마 유적이 있다. 전투용 주철제 망치와 불상의 토제 거푸집, 주철제 솥, 수막새, 토기와 도자기, 저울추, 국보인 대형 수레 차관, 뼈조각 모자 장식, 석제 벼루, 파스파 문자 인장, 청동거울 등이 전시돼 있다.

 

전통의상과 장신구 전시실은 할하, 부리야트 등 20개 몽골민족의 전통의상과 장신구가 전시돼 있다. 할하족은 몽골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할하족의 전통 복식과 장식이 몽골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흉노시대부터 13세기까지 전통 의상의 변천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출토유물과 역사기록 그림, 19세기 말에서 20시기 초 몽골인들의 의상이 전시돼 있다. 몽골인의 상징인 부싯철과 칼, 코담배병과 주머니 등도 눈에 띤다.

 

전통문화 전시실에는 17~20세기 몽골인들의 정신문화를 엿볼 수 있는 샤머니즘과 불교 관련 미술품, 책자, 인쇄판, 전통악기, 행사와 축제용 기구, 전통놀이기구 등이 있다. 몽골은 오래전부터 자연, 조상, 천신숭배 등 각종 민간신앙이 전해내려왔다. 전통악기인 모린 호르(마두금)는 몽골인의 상징으로 2003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전통놀이로 소와 양의 복사뼈를 이용한 게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7월11일~13일 국가적인 축제인 ‘나담’축제는 몽골 씨름인 ‘부흐’, 활쏘기, 말달리기 등 3종의 경기를 한다. 말달리기는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 참가한다. 말의 연령에 따라 거리가 달라진다.

 

몽골인의 생활방식 전시실 3층에는 주거 수단인 ‘게르’를 비롯 가구, 마구, 수렵도구, 농기구, 대장간 도구 등 다양한 민속품이 전시돼 있다. 게르는 몽골 유목민들이 계절별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동하기 편한 조립식 가옥 게르에서 거주한다.

 

소뿔 젖병, 수레와 나무 안장, 가죽부대와 막대, 말안장, 마구, 대형청동 솥, 물통, 전통수렵, 농업 등에 관한 사진과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 몽골 전통 가옥 게르 내부 시설

 

금동탑, 불상 주형틀, 사르디깅 사원터 출토품, 경녕사, 관인, 은도장, 만주도장, 청대 종이 화폐 및 화폐,문서, 군사장비, 화약통, 청대 고문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17세기~20세기 몽골 전시실은 반청 운동을 일으킨 친군자브의 초상화 등이 있다. 이외 내몽골의 아브가족 등 귀족들이 릭딩칸의 몽골 통일 움직임에 반대해 할르하 몽골의 세쳉칸 지역에 도망와 거주하고 있었던 사건이 담긴 헤섹 바이씬 비석, 몽골 전통 종교 창시자 자나바자르 초상과 그가 만든 주전자 및 그가 고안한 ‘서염보’문자가 있다. 고대 인도의 란즈문자를 기초로 해 총 90자로 만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내려가도록 기록돼 있다. 첫 자 표기는 자유와 독립,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 태양, 달 2개의 삼각형 형태, 2개의 수평 직사각형, 물고기 등 구성돼 있고, 1911년 몽골이 청나라에서 독립한 후 국가의 상징이 됐으며, 현재 몽골 국기와 국장 그리고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고 있다.

 

1911년~1920년 전시실은 청나라로부터 몽골이 독립하고 종교와 정치 일체를 통치하는 황제로 불교 대승 보그드를 추대해 민족 부흥이 시작된 시기를 보여주는 사진과 보그드 칸과 부인을 비롯해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담당한 유명 인물들의 사용품 등이 전시돼 있다.

 

러시아 학자 마이스키에 의하면 1918년 몽골인구는 약 60만 명(중국인 10만 명, 러시아인 500명, 몽골인 54만 2,004명)이었다. 급증한 중국 상인들로 인해 경제와 사회 붕괴가 진행되던 몽골은 반청, 반중국 운동이 일어났고, 마침내 1911년 12월29일 독립을 선포했다. 이곳에는 몽골의 마지막 칸인 보그드 잡존담바의 금옷 의례복, 국경에서 사용했던 소형국기, 귀족용 저고리, 여성용 조끼, 몽골국 지도(1913년~191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쇄), 독립선언서, 독립운동가 사진, 법률서, 전통문자 교과서 및 문법책 등이 전시돼 있다.

 

한편, 몽골의 문자는 갈릭문자 또는 칼리카라고 한다. 13세기경 위구르문자를 모체로 해 형성된 문자로 티벳문자의 영향도 받았다. 초원에 종종 보이는 흰색 파란색 천 등이 감싸진 돌탑 등에 기원하는 샤머니즘은 티벳의 영향을 받았다.

 

13세기 라마승 파스파가 만든 파스파문자, 17세기 중엽 자야 반디타가 만든 도도문자, 17세기 후반 고승 자나바자르 만든 서염보문자 등 3종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 전통 몽골문자는 내몽골자치구에서만 사용하고 몽골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199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만주문자도 몽골문자 형태를 받아들여 만들었다.

 

1940년까지 사용됐으나 1930년 4월 몽골인민혁명당의 제8차 전당대회에서 기존의 몽골어가 언문일치가 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한 후 러시아 문자인 키릴을 사용하자는 견해가 제기돼 1945년 5월 키릴문자 사용을 결정했다. 현재는 러시아 알파벳인 키릴문자를 사용한다. 러시아 자모 33자에 O,Y를 더했다. 이처럼 대중의 생각과 관계없이 체덴발 의장과 국가 고위위원들의 결정으로 러시아 문자로 바뀌게 됐다.

 

사회주의 시대 전시실은 1921년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고, 이후 1990년까지 70년간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몽골 인민당 인장, 총, 국방장관 도장 보관함, 오지그릇세트, 인민혁명당 포스터, 몽골문자 타자기, 각종 훈장, 각종 사진, 국무총리 의례복 및 의장용 대도, 은장식 나무물통, 헌법 자수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민주화시대 전시실은 1990년 조릭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해 7월 자유선거가 실시돼 9월 제1대 오치르바트 대통령이 선출됐으며, 1992년 1월13일 새로운 헌법과 국명을 몽골인민공화국에서 몽골국으로 바꿨다. 각종 민주화 관련 사진과 민주화운동 신문기사, 몽골 민주당 인장, 국회의장의 망치와 보루, 몽골국기(1990년)와 국장, 몽골비사, 몽골비사 집필 750주년 기념비, 가죽금속, 제2대 대통령 바가반디의 의례용 허리띠, 화폐 등이 전시돼 있다.

 

▲ 몽골의 마지막 칸이자 불교대승 보그드 잡존담바 호탁트(1870~1924년)와 부인 덩덕 돌람 밀랍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