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민족의 기원

③ 한민족의 뿌리, 몽골의 역사와 문화

자연정화 2018. 7. 20. 13:34

③ 한민족의 뿌리, 몽골의 역사와 문화

욜링암, 콩고린엘스, 바양작, 온기

풀이 자라지 않는 광활한 대지와 금빛 모래사막은 차라리 예술

 

출처 : 한려투데이 2013. 07. 26. 채흥기 기자

 

사계절 녹지 않는 얼음계곡 욜링암-계곡사이 물 흐르고 풀 자라

 

▲ 콩고린엘스 모래산

 

산중턱 누운 향나무의 짙은 향

 

우린 23일 시내 관광을 마치고, 마라톤 출발지인 고비사막 달란자드가드로 향했다. 이곳은 남고비의 주요 도시다. 630km 거리로 차가 늪지대에 빠져서 나온 시간을 제하더라도 20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다. 길이 좋지 않은데다 폭우 형태의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6월24일 오전 6시경 도착한 우리는 식사 후 50분 휴식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30키로를 달렸고, 얼음계곡이 있는 욜링암 관광에 나섰다.

 

욜링암 입구는 말과 돌 등을 파는 좌판이 있었다. 태양의 자외선이 강해 햇빛가리개를 해야 했다. 오전에 달리기를 한 후라 몸은 무거워 왕복 약 3키로 정도 거리를 말을 타고 갔다. 이곳은 협곡으로 이뤄져 있으며 암석 산악이 발달돼 있고 산 중턱에는 누운 향나무가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많이 분포돼 있다. 계곡엔 물이 흐르고 풀도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사시사철 계곡에 얼음이 그대로 남아있다. 얼음이 있는 계곡은 서늘했다. 협곡으로 인한 그늘과 선선한 바람이 사시사철 얼음이 녹지 않도록 하는 것 같았다.

 

이 지역은 제법 산이 있는 곳이다. 이외는 대부분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는 사막이다. 풀이 없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차이만 있지 풀이 자라고 있다. 달란자드가드에서 본격적으로 사막이 시작되는 지점은 풀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황량한 사막이다. 보이는 건 작은 돌들과 모래뿐이다. 약 180km 사막지대는 거의 풀이 자라지 않는 황량한 사막이다.

 

중간 쯤 가는데 몽골인들이 운유르 몽골울트라연맹 사무총장에게 마유주를 준다. 우리도 이끌려 한 잔을 얻어 먹는데,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마유주는 상한 음료에 식초가 가미된듯한 맛이 났다. 대부분 사람들이 마시고는 몹시 힘들어 한다. 마유주는 세계 10대 혐오식품 1위에 들어갈 정도로 처음 먹는 사람에겐 먹기 힘든 술이다. 몽골의 유목민들이 자주 마시는 암말의 젖을 숙성시켜 만든다.

 

▲ 욜링암 계곡의 얼음. 사시사철 녹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 욜링암 입구. 한 아주머니가 딸과 함께 기념품을 팔고 있다.

 

▲ 몽골 유목민 가족

 

모래사막, 콩고린엘스 / 염수흐르는 오아시스

 

욜링암 관광 후 차로 이동 후 한 마을에서 출발 10km를 뛰었고, 180km 정도를 이동해 콩고린엘스 캠프에 도착했다. 콩고린엘스는 ‘엘스’가 모래언덕이란 뜻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180km 길게 띠 모양을 하고 있는 모래사막이다.

 

식사를 할 수 있는 동은 통나무로 지어졌고 왼쪽은 위성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고급스런 통나무 숙소와 오른쪽은 2~3명이 잘 수 있도록 침대가 놓여있는 게르이다. 주인은 한국에서 8년 정도 일해 돈을 모아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을 보태 이곳 캠프를 꾸렸다 한다. 지금까지 가본 곳 중 가장 크고 시설이 잘돼 있었다.

 

나무 등을 태울 수 있는 보일러가 있고 전기는 식사 시간만 주어지는 자가발전이며, 게르에는 태양광발전을 통해 밧데리에 전기가 저장돼 밤에 쓸 수 있다. 사막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음이 신기했다. 관광용 게르는 하루밤 9만 원 정도로 상당히 비쌌다. 주변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이러한 게르 숙소가 몇 군데 마련돼 있다. 이들은 5월부터 10월경까지 장사를 하고 문을 닫는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겨울이 오기 때문이다.

 

이곳 주인은 한국에서 8년 정도 일해 돈을 모은 여기다 캠프를 꾸렸다. 저녁에 염소고기 한 마리를 잡아 삶아 주었다. 염소고기를 넣고 돌과 함께 당근과 감자를 넣은 다음 철사로 뚜껑을 막고 삶는다. 일종의 압력솥이다. 다 삶은 후 뚜껑을 열고 달궈진 돌을 주었다. 손과 손으로 이동하며 식히는 일종의 관습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날 저녁 38.9도의 몽골 보드카에 염소고기를 먹었다.

 

다음 날 오전 모래사막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오르는데, 숨이 너무 가빠 기어올랐다. 모래는 너무 가늘어 부드러웠다. 태양은 뜨거웠다. 정상까지 300m 는 족히 돼 보였다. 오르는데 기어서 올랐다. 양손을 모래에 넣으면서 기어올랐다. 정상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 태극기를 펼치려 해도 잘 펼쳐지지 않았다.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오는데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모래가 쓸려가면서 “윙윙” 소리가 마치 비행기 소리 같았다.

 

모래산에서 내려와 사막주 15키로를 뛰었다. 출발지점을 조금 지나니 염수가 흐르고 풀이 자라고 있었으며,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염수는 소금물이 녹아든 물이다. 그 옛날 이곳이 바다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풀 지대를 지나 모래지대를 달리는데, 모래사이에 하얀 가루가 보였다. 바로 소금이다. 손으로 찍어 맛을 보는데, 짠맛이 났다. 어떤 경로로 모래위에 사막이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을 뒤로 하고 캠프까지 달린 후 점심을 먹고 인근 민가를 방문해 가져온 생활필수품을 전달하고 낙타타기 체험을 했다. 미국인 로이가 낙타에서 떨어져 갈비뼈를 다쳤다. 민가는 부부와 딸 둘 등 네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막내는 태어날 때 자궁에서 잘못 나오는 바람에 발달장애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치료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지금 와서 되돌릴 수는 없을 듯 했다.

 

쿠빌라이 라마교 장려, 공산화로 700여 라마사원 파괴

 

▲ 비양작의 고생대 나무 작나무 군락지. 우리의 주목처럼 나무가 단단하다.

 

▲ 공룡화석이 대량 발견된 바양작

 

수많은 공룡화석 발견지 바양작 / 고생대 식물 ‘작’나무 다량 분포

 

우리는 캠프에 도착 후 공룡화석이 발견된 바양작으로 갔다. 1922년 수많은 공룡뼈와 공룡알들이 발견된 곳이다. 지금도 곳곳에 공룡뼈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또 구석기 시대 다양한 유물과 암각화 등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몽골의 그랜드캐넌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붉은 흙 즉 황토다. 이곳에서 발견된 화석은 몽골자연사박물관 전시돼 있기도 하고 세계 곳곳 박물관으로 팔려나갔다고 전했다.

 

또 인근에는 고생대 식물인 ‘작’나무가 많이 분포돼 있다. 우리나라의 고산지대에서 사는 주목과 비슷한 나무로, 나무는 매우 단단하고 입은 부드럽고 수분이 많이 있었다. 부드러운 황토흙과 고운 모래가 있으며, 바양작에서 작은 바로 ‘작’나무를 의미한다고 한다. 바양은 많다는 뜻이고 쟈크는 나무이므로 쟈크나무가 많다는 의미다.

 

온기로 이동했다. 이곳은 물이 흐르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주변엔 제법 큰 라마사원이 있었던 곳. 몽골 인구의 90% 정도가 라마교 신자로 추정되고 있다. 원나라 쿠빌라이에 의해 티벳 승려 ‘파스파’를 왕실에 초청해 특권을 주면서 수백개가 넘는 라마교 사원이 생겨났다. 이는 결국 원나라를 파탄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700여개의 라마교 사원이 파괴됐다.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곳 역시 큰 라마교 사원과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는데,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

 

시크릿 오브 옹기 투어리스트 캠프 앞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세찬 바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 2시경 깼다. 사막에는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이 불어 닥친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불 때도 있다. 앞에는 깨끗한 물이 흐린다.

 

▲ 몽골인이 준 마유주를 건네는 운유르 몽골울트라연맹 사무총장

 

▲ 출발지 달란자드가드. 파란천과 양젖을 먹는 것으로 손님을 맞는 예법이다.

 

▲ 라마교 집단 거주지

 

▲ 한국에서 8년 정도 근무하면서 돈을 모아 콩고린엘스 지역에 캠프를 차린 주인장이 염소고기를 삶은 후 꺼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