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소(仰韶) 문화의 정체, 그리고 용산(龍山) 문화-1
출처 : 오뚜기 2017. 06. 18.
세계 4대 문명은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 등을 말한다.
[그림 1] 세계 4대 문명
그런데 황하문명의 경우, 1921년에 앙소(仰韶) 문화(서기전 5,000~3,000년 경)가 하남성 승지(澠池)현에서 발견된 이래, 황하 유역에서 많은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중국 문명의 발상지가 황하 유역이었으며, 그 후 점차 장강 유역 등 주변지역으로 확대되었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3년과 1978년에 발굴된 절강성 여요(余姚)시 하모도(河姆渡) 문화에 의하여 이 설은 뒤집어졌다. 왜냐하면 하모도 유적은 기원 전 6,000~5,000년 경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즉, 하모도 유적에서 대량의 볍씨 등이 발견되고 벼농사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주거형태는 고마루식(高床式)이어서 황하 문명과는 뚜렷하게 계통이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중국 문명이 바로 황하 문명이라고 하는 통설이 깨졌을 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이 세계 4대문명이라고 하는 통설도 뒤집어지게 되었다.
그간 황하 유역과 장강 유역에서 발굴된 유적에 근거하여 대표적인 유적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면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다. 즉, 같은 계통으로 분류되는 유적은 같은 색으로 표시했는데, 흰 색 부분은 아직 연관 관계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근거: 『위키백과』 등)
[그림 2] 황하문명과 장강문명 유적의 시기별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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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유역 |
장강 상류 |
장강 중류 |
장강 하류 | ||
BC8000년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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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섬암 유적 |
셴런퉁・루퉁환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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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7000~6000년 |
배이강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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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두산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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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6000~5000년 |
베이강문화, 노관대문화, 북신문화, 자산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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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가강 문화 |
청베이시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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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000~4000년 |
앙소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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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병문화 |
하모도문화 | |
BC4000~3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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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계문화 |
송택문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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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문화 | |||||
BC3000~2000년 |
용산문화 |
보돈문화 |
굴가령문화 | |||
삼성퇴 유적 |
석가하문화 | |||||
BC2000~1000년 |
후강문화(하 ?) |
마차오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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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두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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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두문화 (천도 전의 은) |
이리강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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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 후의 은) |
은 |
오성문화 |
후슈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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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주 |
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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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000년 이후 |
파, 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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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월 |
또 1954년에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에서 발굴된 홍산문화(서기전 4,700~2,900년 경)를 비롯하여 80년대 이후, 요하 주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굴된 여러 유적들은 요하문명(기원전 8,000~1,500년 경)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기존 황하문명의 시기보다 훨씬 앞선 시기의 유적들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요하 주변 지역, 황하 상·중·하류 지역, 장강 상·중·하류 지역 등이 각각 서로 서로 문화에 영향을 주는 한편,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을 이루어 갔다고 해석하면서, 요하문명이 한족(漢族) 문명의 시발점이라고 포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제까지 중국 고대 문명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던 대표적인 유적은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황하 중류지역 하남성 승지(澠池)현에서 발굴된 앙소(仰韶) 문화(서기전 5,000~3,000년 경) 유적이었다.
즉, 이제까지 앙소문명에서 산동반도와 장강유역 등 각지로 문명이 전래된 것처럼 해석해 왔으나, 장강 문명과 요하문명이 차례로 나타남으로써, 그간 앙소문명이 동북아 지역에서 마치 고대 문명(신석기시대 등 선사시대)의 시발점인 것처럼 허울좋게 누리고 있던 역사의 비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더불어 역사시대로 진입한 이후에도 진·한(秦·漢) 시대와 수당(隋·唐) 시대 등을 거치면서 송·요·금(宋·遼·金) 등에 이르기까지 동북아 지역에서 볼 때, 어디서 어디로 문명이 전래되고, 누가 누구에게 조공을 하였으며, 역사의 주류가 동쪽이었는지, 서쪽이었는지 시원하게 밝혀지게 될 것이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앙소(仰韶) 문화의 정체, 그리고 용산(龍山) 문화-2
출처 : 오뚜기 2017. 06. 18.
1921년에 하남성(河南省) 삼문협(三門峡)시 승지(澠池)현 앙소(仰韶)진에서 앙소문화(서기전 5,000~3,000년 경) 유적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그 이후, 앙소문화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섬서성(陝西省) 위하(渭河) 유역, 산서성(山西省) 서남부와 하남성(河南省) 서부의 협장(狹長)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즉, 앙소문화 유적들의 위치는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1] 앙소문화 유적지 등
앙소문화에 속하는 유적으로서 1921년에 발굴된 하남성 승지현 앙소 유적 외에, 1953년에 발견된 섬서성 서안(西安)시 반파(半坡) 유적과 하남성 삼문협(三門峡)시 섬현(陝縣) 묘저구(廟底溝)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반파 유적이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즉, [그림 1]에서 까만색 화살표처럼 반파문화가 동쪽으로 전래되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아무튼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앙소(반파) 문화가 황하 상류에 전래되어 감숙앙소(甘肅仰韶)문화를 탄생시켰으며, 산동성(山東省)의 농경문화에 영향을 끼치면서 용산(龍山) 문화가 성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조사를 통해 하남성 정주(鄭州)시 신정(新鄭)시 배리강(裵李崗) 유적과 하북성 무안(武安)시 자산(磁山)진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앙소 문화보다 앞선 시기의 초기 농경문화유적이라고 한다. 배리강 유적과 자산 유적의 위치는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다.
즉, 배리강 유적과 자산 유적이 시기적으로 먼저이고 이를 이어서 앙소 문화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림 1]에서 빨간색 화살표 방향과 같이 황하 이북에서 황하 이남으로, 또 황하 동쪽에서 황하 서쪽으로 문화가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앙소문화 중에서 반파(半坡, 서기전 5,000~4,300년 경) 유적이 가장 이른 시기라면, 반파 유적에서 동쪽 앙소 유적으로 문명이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새로운 발굴조사를 통하여 배리강 유적(서기전 7,000~5,000년 경)과 자산 유적(서기전 6,000~5,000년 경)이 발굴됨으로써 동쪽에서부터 서쪽 앙소문화쪽으로 문명이 전래되었다고 하니 문화 전래방향에 관한 해석이 서로 상충하고 있다.
그러나 좀더 세밀하게 관찰하여 중화인민국 측에서 선사시대 역사를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밝혀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앙소문화(서기전 5,000~3,000년 경) 는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동서로 약 1,000㎞에 달하며, 남북으로도 거의 1,000㎞에 이른다.
②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결과에 따르면, 대략 서기전 5,000~3000년 경이다.
③ 삽·도끼·자귀·끌·칼·화살촉·물레와 같은 비교적 발달한 간석기가 있으며, 뗀석기로는 돌칼과 반상기(盤狀器)·맷돌·숫돌 등이 있다.
④ 농업이 비교적 발달하여 조·수수·기장 등을 재배했고, 주로 돼지를 사육했으며, 수렵·어로·채집에 종사했다.
⑤ 토기는 대개 이조반축법(泥條盤築法)을 써서 만들었고, 붉은색이 주조를 이룬다.
⑥ 취사용구 및 시설로는 솥·시루·부뚜막·항아리 등이 있고, 물그릇으로는 입이 작고 바닥이 뾰족한 것, 입이 작고 바닥이 편평한 것, 표주박 모양의 병, 마늘 모양의 주전자 등이 있다.
⑦ 식기로는 주발·사발·잔 등이 있고, 저장용기로는 접시·항아리·단지·독 등이 있다.
⑧ 양사오 문화는 무늬가 그려진 채도(彩陶)가 특징이며, 따라서 채도문화라고도 부른다.
⑨ 촌락의 유적지 중에서 임동(臨潼) 강새(姜寨)의 촌락에 100여 채가량이 있는데, 5개 조가 하나의 권역을 형성하고 있다. 사방에는 도랑이 둘러쳐 있어서 당시의 비교적 엄밀했던 씨족공동체제도를 반영하고 있다.
⑩ 앙소 문화 초기에는 집단 합장과 동성 합장이 성행했고 몇 백 명이 함께 매장되었으며, 머리는 서쪽을 향하게 해서 질서 있게 안치했다. 각 묘지의 규모와 수장품은 차이가 별로 없었으나, 여자의 수장품이 남자보다 약간 많았다. 이는 당시 모계사회였음을 설명해준다.
반파(半坡, 서기전 5,000~4,300년 경) 유적지는 발굴된 유지(遺址) 일부를 그대로 지붕을 씌워서 반파유지(半坡遺址)를 보존하고 있으며, 서안반파박물관을 설립하여 유적과 유물들을 공개하고 있다.
대략 1만㎡에 달하는 지역을 발굴하여 40여 개의 주거지(址),200 곳을 넘는 저장고∙제도요(製陶窯),250여 기의 묘장(墓葬)이 조사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섬서성 서안시에 있는 서안반파박물관의 모습과 유지(遺址), 전시 유물 등은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런데 반파 유적은 동쪽에 위치했던 묘저구 유적(서기전 4,400~3,000년 경)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과연 문명이 황하강을 따라 동쪽으로 흘렀는지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계속>
[그림 2] 서안 반파박물관의 유지모습과 전시 유물 / 사진출처 : 구글 어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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