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시대의 청동기에 대하여
1. 요하 유역의 청동기 문화
내몽고 적봉 일대는 홍산문화뿐만 아니라 유명한 하가점(夏家店) 문화도 발생한 지역인데, 이 하가점 문화는 신석기와 청동기가 모두 출토되는 하층문화와 청동기 유물만 출토되는 상층문화로 나뉜다. 하가점하층 문화류는 적봉시를 중심으로 한 내몽고 동부지역과 하북성(河北省) 북부 및 요령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지역의 흥륭와 문화류와 그 위에서 발전한 홍산문화 위에서 더욱 발전한 문화이고, 하가점상층 문화류는 하가점하층 문화류 위에서 발전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하가점하층 문화층의 오한기(敖漢旗)의 대전자(大甸子) 유적 등지에서는 주로 금귀걸이ㆍ반지ㆍ단추ㆍ동모ㆍ동손잡이ㆍ활촉ㆍ작은 칼 등이 출토되는데, 금현(錦縣)의 수수영자(水手營子) 유적에서는 창날과 손잡이가 함께 연결된 길이 80.2cm에 이르는 정교한 청동무기인 꺽창도 발굴되었다.
이 문화 유적들을 방사선 탄소측정연대로 측정한 결과 요령성의 하가점하층 문화 청동기 중에 가장 이른 것은 내몽고 적봉시 지주산(蜘蛛山) 유적의 것으로 방사선 탄소측정연대로 기원전 2,015년~90년이고 나이테 연대측정으로 교정한 연대는 기원전 2,410~140년이다. 조양시(朝陽市) 용성구(龍城區) 열전창(熱電廠) 유적은 방사선 탄소측정연대로는 기원전 1,755~135년부터 1,480~250년까지로 나이테 연대측정에 의한 교정연대는 기원전 2,115~150년대부터 1,745~270년이다.
요령성 건평현(建坪縣) 수천(水泉) 유적은 방사선 탄소측정연대로는 기원전 1,830~90년이고 나이테 연대측정으로 교정한 연대는 기원전 2,180~110년이다. 요령성 북표현(北票縣) 풍하(豊下) 유적은 방사선 탄소측정연대로는 기원전 1,600~80년이고 나이테 연대측정에 의한 교정연대는 기원전 1,930~130년이다. 또 내몽고 오한기 대전자 유적은 방사선 탄소측정연대로는 기원전 1,440~90년이고 나이테 연대측정에 의한 교정연대는 기원전 1,695~135년이다.
하가점상층 문화는 대릉하 유적과 적봉 등지를 중심으로 한 하가점하층 문화의 발달된 청동기 문화의 기반 위에서 성립하고 발전하였는데, 이 시대는 하가점하층 문화에 비하여 청동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진다.
하가점상층 문화에서는 공병식검(?柄式劍), 칼, 도끼, 톱날 등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청동기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출토된 하가점상층 문화의 유적은 기원전 14세기 이후까지나, 이는 유적의 추가발굴로 하가점상층 문화의 상한연대는 기원전 16~18세기로 올라 갈 것으로 보인다.
2. 요하 유역 청동기 문화의 주인
여기서 고조선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관건이 되는 부분은 요서 지역 청동기문화, 즉 하가점상(하)층 문화와 대릉하 동쪽에 분포하는 비파형동검 문화를 과연 어느 주민집단의 문화로 보느냐 하는 점이다. 요서 지역 청동기문화의 담당자를 고조선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학계의 주류는 동호족이냐 산융족이냐를 놓고 논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요동 지역의 비파형 동검 문화의 주체가 동호ㆍ산융인지, 아니면 고조선의 배경 문화 또는 예맥족의 것인지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1980년대 초 중국 학계의 근풍의(?楓毅)는 요령 지역 청동기문화를 요서와 요동으로 구분하고, 요서 지역 청동기문화의 담당자는 동호족, 요동 지역의 담당자는 동이족이라고 보았다. 일본 학계도 대부분 이 견해를 인정해 현재 중국 동북 지역 청동기문호 이해의 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달리 북한 학계에서는 요서 지역의 청동기문화를 맥족(貊族=호맥=동호)의 문화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청동기문화는 부여ㆍ고구려(맥족)의 옛 조상으로 파악되는 발(發)ㆍ동호의 것이며, 요동 지역의 고조선 종족과 함께 고대 조선족의 소산임을 밝히고 있다.
반면에 남한 학계에서는 시라무렌하~노합하 지역을 비파형 동검과 공병식(?柄式, 자루를 끼울 수 있는 투겁이 달린) 단검을 같은 시기에 공존했던 별개의 문화 유형으로 설정하고, 기하학무늬 청동거울과 비파형 동검이 주로 분포하는 대릉하 유역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남한 학계에서는 요령 지역의 청동기문화를 대릉하 유역을 경계로 하여 그 북쪽 지역과 남쪽ㆍ동쪽 지역을 구별하는 것이 통설이다.
하가점하층 문화에서 위영자(魏營子) 문화 단계를 거쳐 하가점상층 문화로 발전한 요서 지역에는 대릉하 유역을 중심으로 유적이 밀집 분포하며, 대릉하 북쪽 지역으로는 노합하ㆍ영금하 등의 강을 따라서 유적이 분포해 있다. 요동 지역에는 혼하ㆍ태자하 일대에, 요동반도 지역은 대련(大連)을 중심으로 유적이 밀집해 있다.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그 동쪽의 단동(丹東) 지구에는 유적의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유물의 특성이 압록강 유역과 연결되어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남한 학계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대릉하 유역을 경계로 요령 지역 문화권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송호정(宋鎬晸)은, 청동기와 토기, 그리고 무덤 양식 등에서 요동 지역과 요서 지역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요하~대릉하 일대를 접경지대로 하여 요서 지역의 하가점상(하)층 문화와 요동 지역의 비파형동검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가 구분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복기대(卜箕大)는, 하가점상층 문화로 알려진 대릉하 문화는 위영자 문화라는 중간 단계를 매개로 하여 하가점하층 문화와 연결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한반도 지역까지 연결되고 있고, 또한 이 문화는 중원 지역과는 다른 문화라는 점 등을 들며 요서 지역의 하가점하층 문화와 하가점상층 문화 모두 고조선과 연결된 문화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고조선의 청동기문화 경계에 대해 아직까지 학계에서 통일된 의견이 없지만, 대릉하를 경계로 하여 청동기 문화의 특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문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점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요동 지역과 요서 지역의 문화 차이는 시대에 따른 변화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또한 고조선이 여러 부족이 연합한 형태의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요령 지역의 다양한 청동기 문화들을 넓은 의미의 고조선 문화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3.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기원전 25세기로 올라가는 청동기 유적이 두 곳이나 발굴되었다. 하나는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 유적이다. 다섯 기의 고인돌이 발굴된 이 유적에서 채취한 숯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는 기원전 1,950~200년으로 나왔는데 교정 연대는 기원전 2,325년경이 된다. 이 유적에서 청동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므로 이 연대를 청동기 시대의 연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이다. 이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수집된 숲에 대한 방사성탄소측정 결과 그 연대는 기원전 2,190~120년ㆍ1,980~120년으로 나왔는데 교정 연대는 기원전 2,630년ㆍ2,365년경이 된다.
고조선의 초기 청동기 유물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청동-아연 유물이다. 중국 은(殷)나라 때의 청동기는 구리ㆍ주석ㆍ납이 주성분인데 아연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반면 고조선의 청동기는 아연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 청동’이라고 불린다. 청동기를 주조할 때 적당한 양의 아연을 섞으면 주조하기에도 좋고 부드러운 금빛을 띠게 된다. 그러나 청동기는 1,000°C 이상으로 가열해야 하는 반면, 아연은 420°C에서 녹고 900~950°C에서 증발하기 때문에 청동에 아연을 섞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이상으로 볼 때 고조선의 청동기문화는 중국과는 양식이나 형태면에서 뚜렷이 구분되기도 하지만 제작 기술이나 질적인 면에서도 그 수준이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청동기의 시작은 발굴 유물로 볼 때 최소 기원전 25세기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샤자뎬 하층문화 (夏家店 下层文化)
샤자뎬 하층문화(하가점하층문화, 중국어 간체자: 夏家店下层文化, 정체자: 夏家店下層文化, 병음: Xiàjiādiàn xiàcéng wénhuà Lower Xiajiadian culture[*])는 기원전 2200년부터 1600년경까지 현재의 중국 동북부, 내몽고 자치구 남동부, 허베이성 북부, 랴오닝성 서부를 중심으로 한 고고 문화를 말한다.
내몽고 자치구 츠펑 시 샤자뎬 유적의 하층을 표식 유적으로 한다. 같은 지역의 훙산 문화에 이어지며, 그 과도기를 샤오허얀 문화(小河沿文化)라고 한다.
생활의 중심은 잡곡 재배이며, 그 밖에 목축, 수렵도 행해졌다. 유적에서는 돼지, 개, 양, 소 등이 발견되었다. 정주 생활을 하면서 인구밀도는 높았다. 석기, 골기, 토기가 발견되고 있고, 그 밖에 금, 납, 칠기, 비취, 동기, 청동기도 발견되었다. 동기, 청동기로 만든 귀고리가 많고, 뼈를 이용하여 점도 행해졌다.
집은 둥글고, 흙과 돌로 만들어졌다. 취락은 벼랑이나 경사면에 방어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또는 석벽을 취락의 주위에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같은 지역에서 그 후, 샤자뎬 상층문화가 퍼졌다.
샤자뎬 상층문화 (夏家店 上层文化)
샤자뎬 상층문화(중국어 간체자: 夏家店上层文化, 정체자: 夏家店上層文化, 병음: Xiàjiādiàn shàngcéng wénhuà)는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전 600년경, 현재의 중국 동북부에서 형성된 청동기 문화를 말한다.
내몽고 자치구 츠펑 시 샤자뎬 유적의 상층을 표식 유적으로 한다. 스키타이에서 유래된 유라시아 스텝의 청동기 문화의 영향이 강하다. 또 서주(西周)와 동시대에 이 영향도 있다.
현재의 내몽고 자치구 남동부, 허베이성 북부, 랴오닝성 서부를 중심으로 하여, 같은 영역에서 앞서는 샤자뎬 하층문화 보다 약간 넓은 범위에 이르러, 북쪽은 자모론 강의 북쪽에 이른다. 샤자뎬 하층문화에 비하면 인구밀도는 낮았다. 농업을 중심으로 했지만, 유목 생활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샤자뎬 하층문화에 비하면 토기는 뒤떨어지지만, 청동기나 석기가 더 우수했다. 청동기에는 검, 도끼, 도, 투구 등이 있고, 동물이나 자연에 대한 것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것들은 스키타이로 연결된 유라시아 스텝을 통한 밀접한 문화적 접촉을 나타내고 있다. 후기가 되면 주나라(周 )양식의 청동기가 출현한다.
샤자뎬 하층문화에 비하면 항구적인 건축물이 적어서, 하층 문화의 건축물 또는 그 재료를 유용하는 것이 많아진다. 말과 마구가 많이 발굴되어 말이 중요한 생활 수단이 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가축은 돼지를 대신해 양이나 산양이 더 중시되게 되었다. 샤자뎬 하층문화에 비해 지배계층의 무덤은 더욱 호화로운 부장품을 가지며, 묘제는 적석총과 분구를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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